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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ㆍ경악'…서울판 '살인의 추억'

절도ㆍ성폭행 없이 '증거인멸'‥불우한 환경이 '적개심·증오'로 돌변

지난해 하반기 서울에서 잇따라 발생한 부유층노인 연쇄 살인사건이 경찰 추정대로 동일범의 소행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연쇄살인 용의자인 유영철(33)씨는 노인 살해사건 4건 외에도 추가로 11차례나살인을 자행, 부유층 노인과 출장 마사지 여성 등 모두 19명을 살해해 역대 단일범으로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되게 됐다. 특히 이번 범행은 동기가 종래 살인사건처럼 금품을 노리거나 개인적 원한 등이아니라 여성, 혹은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이었고 이로 인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무차별적으로 자행됐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유씨는 또 부유층 상대 범행 현장에 일절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성폭행하지 않았고 범행중 `실수로' 피를 흘린 혜화동 범행 현장엔 불을 질러 방화로 위장하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대범함과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성관계를 가졌던 출장 마사지 여성들은 일일이 지문을 도려내거나 시신을 잘게토막낸 것으로 드러나 경찰마저 혀를 내두르게 했다. ◆ "부자와 여자가 미웠다" = 유씨는 아버지가 노동일을 하던 가난한 가정의 3남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씨가 중학교 1학년이던 해 아버지마저 지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어머니 밑에서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고 서울의 K공고 재학시절 절도로 소년원에 가면서 유씨는 범죄 인생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학교를 중퇴한 뒤로도 13차례에 걸쳐 특수절도, 성폭력 등 각종 범행으로 7년간복역했으나 92년 전처 황모(34)씨를 만나 가정을 꾸린 뒤 아들도 낳았다. 2000년 3월 특수절도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복역 중이던 2002년 5월 아내의 이혼 소송으로 이혼을 당했고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겼다. 경찰은 이런 인생 이력 속에서 유씨가 자신의 순탄치 못한 인생이 부유층 탓이라는 왜곡된 사고를 갖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의 행복을 부자들이 앗아갔다는것이다. 지난해 11월께 전화방에서 일하던 김모(여)씨에게 호감을 느껴 청혼했지만 전과자에 이혼남, 게다가 지병인 간질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거절당했다. 유씨의 여성에 대한 증오심은 그렇게 커졌다. 안마사 출신 전처 역시 살해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자녀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전처와 자신과의 결혼 약속을 파기한 김씨와 유사한 직업을 가진 보도방과 출장 마사지 여성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 계획된 범죄, 치밀한 범행 = 부유층 노인 상대 살인의 경우 사전에 범행 대상을 선정해 저지른 계획 범죄였다. 유씨는 범행 현장을 사전답사해 대상을 정한 뒤 범행에 들어갔다. 목격자를 피하기 위해 길가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정원이 넓어 외부에서 집안 상황을 알 수 없는부유층 저택을 노렸다. 범행 시각으로는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노인 혼자 집을 지키는 점심시간 전후나 오후 시간대를 택했다. 일단 범행에 돌입하면 무자비하고 철저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노인이든 젊은이든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그는 특히 자루를 짧게 해 쥐기에 편하도록 무게 5㎏짜리 흉기를 직접 만들어 피해자들의 머리등을 수 차례 내리치는 수법으로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예외가 있다면 어린 아이였는데 유씨는 혜화동 사건 때 집에 있었던 당시 7개월된 아이는 그대로 놔뒀다. 이에 대해 유씨는 "나도 아이가 있어서"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는 유씨가 전처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아이 때문에 포기했다는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으로 부유층이나 여성에 대해선 무자비하면서도 아이에게만은유독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범행 후 증거인멸 작업은 더욱 철저했다. "4개 사건을 수사한 결과 경악할 수준이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지문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체모나 정액 등 DNA 추적을 당할 만한 단서는 일절 남기지 않으려 했다. 유씨는 경찰에서 "이 때문에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곳에선모두 발자국을 지우고 나왔는데 신사동 사건 때 승강이를 벌이느라 시간이 없어 발자국을 못 지우고 나온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신사동 사건 때는 또 범행 현장에 흉기를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 사건현장으로되돌아가 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 현장을 떠날 때 잠그고 나왔던방문을 발로 차 부순 점은 경찰 수사 내내 풀리지 않는 의혹이었다. 유씨는 또 "구기동 사건 현장검증을 잘 해봤느냐"며 "그 때 발길질을 많이 해 아마 다리의 털이떨어져 있을 텐데 잘 찾아보라"며 수사진을 조롱하기도 했다. 혜화동 사건 현장에 불을 질렀던 이유는 범행 과정에서 다쳐 흘린 핏자국을 없애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씨는 "핏자국을 지운다 해도 혹시라도 DNA 분석에서 걸릴까봐 아예 불을 질러 이를 없앴다"고 진술했다. 범행 후 경찰 불?薑??걸리면 일부러 간질 증세를 일으켜 검문을 벗어나곤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유씨는 그러나 금품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위조 경찰 신분증과 시장에서 산 수갑으로 경찰을 사칭, 성매매 여성이나 불법 음반.CD 제조업자 등을 협박해 갈취한 돈으로 보증금 400만원에 월 35만원짜리 오피스텔의 월세는 물론 생활비등을 해결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 여성 증오심에 엽기적 토막살인 = 속칭 보도방이나 출장 마사지 여성들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오피스텔로 불러들여 살해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토막내기까지 했다. 특히 첫 희생자가 된 김모(25.여)씨는 손가락의 지문들을 도려내는 것은 물론시신을 잘게 토막내 거주지 인근 모 대학 뒷산에 묻었고 나머지 10명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살해한 뒤 토막내 인근의 모 사찰 근처에 묻었다. 시신을 옮길 땐 토막낸 시신 부위들을 검은 비닐봉지 5~10겹으로 포장해 냄새가나지 않도록 한 다음 택시를 이용해 8~9차례 은닉장소와 주거지를 오가며 시체를 가져다가 묻었다. 묻을 땐 혹시라도 남았을 지문을 염려해 봉지는 다 회수했고 옮긴 시간은 밤 12시 이후를 택해 사람들의 눈길을 피했다. 한마디로 용의주도하게 완전 범죄를 노렸던 셈이다. ◆ "사회적 소외감이 증오심으로" = 전문가들은 유씨가 이처럼 잔인한 연쇄살인마로 변모한 이유를 "분노와 증오로 변한 개인적.사회적 소외감이 공격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방적으로 이혼당한 뒤 그 원인을 자기 내부가 아닌 외부, 즉 전처와 전화방여성에서 찾았고 이런 불만을 비슷한 직업의 여성으로 확대 적용, 무차별 살해에 나섰다는 것. 또 자신의 불우하고 빈곤한 처지 역시 부자들이 자기 몫을 빼앗아간 탓이라고생각한 나머지 부자들을 응징해야겠다는 극단적인 적개심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엔 사회에 만연한 `부자들은 전부 도둑'이라는 식의 부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한 몫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경찰행정학) 교수는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선 사회가 전체적으로 소외.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적 변화에 더 잘 적응하도록 제도적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수사체계 개편 시급 = 살인 사건에 대한 종래 경찰의 수사는 광범위한 탐문수사가 주요 단서가 됐다. 피해자 주변을 이잡듯 뒤져 원한 관계나 금전 관계 등을 밝혀내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사적 원한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포괄적 적개심으로 인한 살인엔 이런 수사 기법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자칫하면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지만 "마사지사들이 30대손님의 전화만 받고 나가면 사라진다"는 전화방 업주의 제보와 검거된 용의자가 제입으로 범행 일체를 털어놓으며 전모가 드러났다. 경찰 내부에서도 `하늘이 도와 범인을 잡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경찰의 현장 감식 능력을 강화해 사건 초기 단서를 확보하고 캠페인을 통한 시민들의 의식 전환으로 경찰의 부족한 수사망을 채워줄 제보나신고가 더 활발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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