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유입땐 세포분자 파괴 '몸속 핵폭탄'<br>작년말 푸틴 비판 前러시아스파이 중독사망<br>러 관련여부·핵물질 통제능력 논란 일으켜
| 치명적 핵방사능 물질 '폴로늄-210'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쓰러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에 입원 중인 생전의 리트비넨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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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 영국 망명 후 한 기자회견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쓰고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비밀을 폭로 중인 리트비넨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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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방사능 물질 '폴로늄-210' 21세기형 암살자로 부상
인체 유입땐 세포분자 파괴 '몸속 핵폭탄'작년말 푸틴 비판 前러시아스파이 중독사망러 관련여부·핵물질 통제능력 논란 일으켜
정리=양철승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csyang@sed.co.kr
지난 2000년 영국 망명 후 한 기자회견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쓰고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비밀을 폭로 중인 리트비넨코.
치명적 핵방사능 물질 '폴로늄-210'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쓰러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에 입원 중인 생전의 리트비넨코.
지난해말 전직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스파이였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런던의 한 병원에서 입원 22일만에 숨을 거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공개석상에서 비판하면서 주목 받아온 그의 사인은 극소량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치명적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중독이었다.
전 세계는 이번 사건을 핵물질로 무장한 21세기형 암살자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 6월호는 최첨단 핵물질이 동원된 이 사건을 과학의 시선으로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 크렘린에 등 돌린 전직 스파이의 암살 의혹
2006년 11월 17일 런던 중부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UCH)의 중환자실에 한 환자가 입원했다. 이 환자는 입원 전 2주간 극심한 설사와 구토에 시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주요 장기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11월 23일 영국 원자력무기연구소(AWE)의 정밀검사를 통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알파 방사선 방출 물질인 '폴로늄-210' 동위원소가 원인임이 밝혀졌지만, 이 소식이 병원으로 전달되기도 전에 환자는 숨졌다.
이 사람의 정체는 KGB의 후속기관인 FSB의 스파이로 활약했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지난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후 FSB의 비밀작전을 폭로하는 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개적 비판자로서 크렘린과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인물이다.
수사 결과 리트비넨코가 폴로늄에 중독된 것은 지난해 11월 1일. 그는 이날 사업가를 자처하는 전직 러시아 군ㆍ정보기관 요원 등 3명의 러시아인과 런던 밀레니엄 호텔에서 만나 차를 함께 마셨는데 그 직후부터 폴로늄 중독증세가 나타났다.
■ 내장기관의 터미네이터 '폴로늄-210'
살인에 쓰인 폴로늄-210은 핵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터미네이터'로 불린다. 이 물질은 지구의 지각에서 우라늄-238이 붕괴할 때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만, 핵원자로 내에서 '비스무스-209' 원소를 중성자들과 충돌시켜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방식으로 매년 100g의 폴로늄이 생산되는데, 대부분 러시아가 그 출처다.
폴로늄-210의 특징은 여타 방사능 물질과는 달리 인체 외부에 있을 때는 전혀 해롭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인체 내부로 유입됐을 때는 탈륨과 같은 방사성 원소들이 내뿜는 감마 방사선에 비해 20배나 치명적 피해를 일으키는 알파 방사능이 방출된다.
이 물질을 삼키거나 호흡기로 들이킬 경우, 또는 혈관 속에 유입되면 인체 내 모든 세포분자들이 터져버린다. 마치 작은 핵폭탄이 몸속에서 터지는 격이다.
전문가들은 리트비넨코에게 투입된 폴로늄의 양은 옷핀의 머리 부분 정도에 불과한 약 1~10기가베크렐(GBq)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기가 베크렐이 인체로 들어가면 초당 100억개의 알파 입자들이 방사능을 방출하기 때문에 생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와 관련, 닉 프리스트 잉글랜드 미들섹스대 교수는 "살해범들은 폴로늄이 감마선을 방출하지 않아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리라는 것, 인체에 투여된 후에도 정체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도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러시아 핵물질
여러 가지 심증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강력한 부인으로 리트비넨코의 사망이 암살의 결과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폴로늄의 출처가 러시아일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번 사건에 러시아 정부가 관련 없다면 인류의 안전에 더 막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옥사나 안토넨코 런던 국제전략연구소 박사는 "시각을 달리해보면 리트비넨코 사건은 푸틴 정권의 핵물질 통제능력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도 있다"며 "이는 곧 세계 곳곳에서 핵물질을 확보한 테러세력들의 출현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이 물질들의 불법거래를 막을 특단의 보안책 마련이 힘들다는 것이다. 리트비넨코 사건은 단순히 기묘한 살인사건이 아니며 21세기 최초의 암살이자 전에 없던 새로운 방사능 물질을 동원한 최초의 살해라는 점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입력시간 : 2007/05/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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