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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勢 고통 짙게 밴 '바다의 돛대'

333년 지배한 스페인 문화ㆍ2차대전 흔적 곳곳에<br>제1관광명소 '사랑의 절벽'엔 차모로 추장 딸 애절한 사연<br>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교회서 관광객들 또 한번 '채플 결혼식

外勢 고통 짙게 밴 '바다의 돛대' 333년 지배한 스페인 문화ㆍ2차대전 흔적 곳곳에제1관광명소 '사랑의 절벽'엔 차모로 추장 딸 애절한 사연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교회서 관광객들 또 한번 '채플 결혼식 태평양은 변화무쌍하다. 끊임없이 뜨고 지는 태양처럼 거대한 수직구름이 쉴새 없이 만들어졌다가 일없이 사라진다. 이런 상승기류는 때로 폭풍이 되어 바다 위의 섬들을 강타하거나 일년에 몇 차례씩 태풍으로 변해 북쪽 깊숙한 곳까지 비바람을 실어 나른다. 이런 거친 태평양을 맨 처음 건넌 사람은 누굴까. 역사는 이를 포루투갈 출신 항해가 마젤란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바다를 건넌 사람들이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등으로 구분되는 태평양의 무수한 섬들엔 마젤란 이전에도 원시 상태의 부족들이 저마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괌의 원주민들은 차모로(CHAMORRO) 족. 이들은 수천 년 전부터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지역에서 넘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마젤란이 1521년 괌의 조그만 항구인 우마탁(UMATAC)에 발을 들여 놓을 때까지 문자가 없이 지낼 정도로 원시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젤란의 후계자들은 당시의 관례에 따라 괌을 그들을 후원했던 카스티야(뒤에 에스파냐로 통합) 왕에게 헌납했다. 차모로어로 ‘바다의 돛대’를 뜻하는 괌은 오늘날 더 이상 낙후 지역이 아니다. 1898년 신대륙의 서부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 나온 미국이 스페인 세력을 축출하고 속령으로 편입한 이래 미국식 교육과 문명의 혜택을 받아 미국 내에서도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주민들은 미국의 시민권과 연금 수령권을 가지며 캘리포니아 주법의 보호를 받는다. 총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8만여명의 차모로족들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며 빠르게 미국식 문화에 동화되고 있다. 괌을 처음 찾는 사람은 새삼 이 섬이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란 점에 놀란다.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가깝지만 곳곳에 미국식 호텔과 건물이 즐비하고 잘 정비된 거리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온통 미국식이다. 태평양이 미국의 내해이고 괌은 미국의 서쪽 끝임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마젤란 이후 333년간이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이 곳엔 스페인의 전통과 문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차모로 추장 딸이 스페인 장교의 청혼을 거부하고 사랑하던 부족 청년과 머리카락을 묶고 몸을 던졌다는 ‘사랑의 절벽(Two Lover's Point)’은 오늘날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젠 쇠락했지만 시내 곳곳엔 스페인 시대에 지어진 성당과 건물들도 심심찮게 남아 있다. 전통을 고집하는 차모로 족들은 미국식 건물보다는 백색 회벽과 빨간색 지붕이 있는 스페인 풍의 집에서 살기를 더 원한다고 한다. 지난 97년 KAL기 추락 사고로 우리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는 괌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인들의 10배에 달한다는 일본인 관광객들은 짙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교회에서 또 한번 올리는 ‘채플 결혼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 때 괌은 일본이 점령하기도 했다. 41년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함께 괌을 장악한 일본은 44년 미군의 대공세로 괌을 다시 내주게 된다. 당시 괌 주변의 전장에서는 하늘과 바다에서의 접전으로 양측간 5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괌의 재탈환은 2차 대전을 종결 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그 이듬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전폭기가 섬의 북쪽 공군기지에서 출격했다. 마침 일행이 도착한 지난 21일은 괌의 탈환을 축하하는 60주년 해방기념식이 있었다. 괌의 최대 번화가인 하가냐 메인도로에서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복장을 한 주민들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나눠타고 ‘하파데이(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시끄러운 경적을 울려댔다. 지금은 은퇴한 왕년의 태평양전쟁 참가자들도 멀리 미국 본토에서부터 날아왔다. 한 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자웅을 겨루던 일본인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들이 이 거리나 섬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2차대전의 격전지 ‘리미츠힐(Limits Hill)’이나 ‘남태평양 기념공원’을 거닐 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한 교포는 “괌의 역사는 곧 태평양의 현대사”라며 “물질적 풍요와 자유가 주는 기쁨 뒤에는 500년간 외세와의 접촉에서 생긴 슬픔과 고통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괌(글ㆍ사진)=강동호 기자 eastern@sed.co.kr 입력시간 : 2004-07-2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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