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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하의 전제조건(사설)
입력1997-05-26 00:00:00
수정
1997.05.26 00:00:00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처방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리를 국제수준으로 내려 안정시키는 일도 묘방이다. 지금은 불경기로 자금수요가 감소돼 금리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국제금리 수준인 6∼7%대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우리나라의 금리구조를 돌이켜보면 이같은 파격적인 금리하락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언뜻 생각하면 무리한 구상으로 끝나기 쉽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외 경제환경이 금리파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는 탓이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감소, 금융시장에 돈의 여유가 있다. 필요하면 해외자금의 유입도 가능, 금리가 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상당히 성숙되고 있다. 지금 이 시기가 정부가 통화를 늘리고 금융개방으로 해외자금을 유입시켜 국내외 금리차를 줄여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통화증가와 해외자금에의 의존은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금융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고 저비용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금리파괴 경제여건 성숙
금융기관이 기업에 저리의 자금을 공급하려면 먼저 저비용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 방법 중에서 통화당국이 유동성을 넉넉히 제공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나 인플레적이라는 한계성이 있다. 비인플레적인 자금조달은 국민들의 여유자금을 저비용으로 동원하는 길과 해외자금 유입밖에 없다. 저비용의 국내 여유자금을 동원하는 것은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방법은 해외자금을 적극 유입하는 것이다.
해외자금을 유입하는 것도 환차손이 발생하면 발목을 잡히게 된다. 우리나라 환율은 지난 1년 동안 크게 올라 해외자금이 오히려 빠져나갔다. 지금은 수출이 기지개를 켜면서 환율도 안정세를 되찾았다. 최근의 급격한 엔화강세로 달러가 하락하면서 원화의 대미환율도 안정됐다. 달러당 9백원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환율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대외개방을 확대, 해외자금을 유입하면 금리하락은 가시화되고 외환위기도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도성장국들의 해외자본유입이 가속화되어 국제금리를 상승시키고 있으므로 해외자금의 비용이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국제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우리 금리보다 크게 저률이므로 국내외 금리차를 축소시키는데는 여전히 도움을 줄 것이다.
○저비용 해외자금 유입을
우리 금리를 하락시키려면 먼저 자금수요자인 기업이 건전한 투자계획과 신뢰의 기반을 구축, 저비용의 자금조달에 힘써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기업은 무모한 투자로 신뢰의 기반을 잃고 기업 스스로가 고비용의 자금시장을 부추겨왔다. 한보사태 후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가 그러하다. 비록 늦기는 했으나 기업들은 스스로 무리한 투자확장을 억제하고 절약하는 자세로 자금수요를 크게 억제, 금리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
○자금수요도 억제해야
최근 중소기업은행이 조사한 설비투자 전망을 보면 올해 설비투자는 8.9%나 감소될 것 같다. 94년과 95년에는 설비투자가 각각 20.1%, 11.4%나 증가했으나 작년부터 감소된 것은 불경기 때문이다. 계열사를 늘리고 설비확장에 앞장서온 재벌들도 올해에는 계열사를 정리하고 불요불급한 투자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이처럼 투자를 억제하고 자금수요를 감소시켰기 때문에 실세금리가 하락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아무리 자금을 알뜰하게 쓰더라도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 파격적인 금리파괴를 단행하지 않는 한 국제수준에는 어림도 없다.
금리파괴는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에서 고수익의 거품을 제거하는 구조개선이 따라야만 가능하다. 모든 돈이 부동산투자나 불건전한 투기성 산업의 고수익을 부추기는 거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돈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만 공급될 때 비로소 건전한 산업체가 저리의 금융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물가안정과 저성장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고수익 기대치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리파괴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만연된 고비용의 거품을 제거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지금 말썽이 되고 있는 정치의 고비용구조는 물론 국민생활에 있어서도 분에 넘치는 사치와 낭비를 제거, 생활의 고비용구조를 파괴해야 한다. 지난해말 은행의 가계대출잔액은 50조원에 육박했다. 매년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가계대출이 금리하락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된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정부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고비용구조를 청산해야 금리파괴와 저비용의 자금수급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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