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농산물 분야의 엄청난 피해를 만회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섬유산업. 하지만 섬유 부문이 기대치를 만족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철통 같은 미국의 2가지 원칙을 깨뜨려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 섬유 분야 비관세장벽인 ‘얀 포워드’(Yarn Forward)와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불가 등이 그것다. 통상협상만 하면 미국 앞에서 작아지곤 한 한국 정부가 이 험난한 장애를 뚫고 항해를 성공적으로 이끌 키는 무엇일까. 얀 포워드는 직물ㆍ의류 등 섬유 완제품에 들어가는 기초원자재인 ‘실’의 생산지에 따라 원산지를 규정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실 등 섬유 원부자재를 중국 등에서 수입해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아 얀 포워드가 완화되지 않으면 FTA로 관세가 철폐되더라도 별다른 실익이 없다. 값비싼 한국산 실을 사용해 의류 등을 생산해도 경쟁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은 섬유산업을 어떤 업종보다도 강력하게 보호해왔기 때문에 얀 포워드를 쉽사리 거둘 것 같지는 않다. 섬유 분야의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캐나다ㆍ멕시코 등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도 얀 포워드를 완화하지 않았고 중남미의 약소국과 체결한 FTA에서조차 얀 포워드 원칙을 지켰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한 전문가는 “미국 섬유업계의 로비력은 미 의회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며 “얀 포워드 완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섬유업계는 얀 포워드 완화로 인한 미국 소비자들의 혜택증대를 강조하라고 조언했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FTA를 통해 질 좋은 섬유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과 업계가 조직적으로 얀 포워드 완화를 위해 로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 중 이스라엘만이 얀 포워드 완화에 성공했다” 며 “이스라엘이 미국과 전통적 우방관계를 맺고 있는데다 유대인의 미국 내 로비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도 섬유산업의 희비를 가를 수 있다. 이와 관련,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국 견제 심리를 적극 활용할 것을 충고했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의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기여도를 향상시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임을 강조하라”고 말했다. 섬유업계 전문가들은 싱가포르와의 FTA에서 개성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때 이용했던 역외가공방식에 의한 원산지 인정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했다. 역외가공방식을 이용, 북한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최종제품 가격의 40%를 넘지 않을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받았던 것. 염규배 섬유산업연합회 국제통상팀장은 “전체 품목이 어려울 경우 일부 제품에 한해서만이라도 한국산을 인정받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권했다. 미국의 섬유수출 관심품목에 대해 전향적인 관세철폐를 제안하는 방법과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해 개성공단과 비슷한 처지의 요르단 내 이스라엘 공장지대를 인정해준 사례도 적극 활용할 협상카드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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