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을 감축하는 수요관리 자원을 전력공급 능력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급ㆍ소비 위주의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전기를 아낀 것도 공급을 한 것으로 간주해 전력거래시장에서 똑같은 대가를 지불해주겠다는 것. 한수원 등 발전회사들은 전기를 생산한 만큼 돈을 버는데 앞으로 수요관리사업자들도 전기를 아낀 만큼 전력거래시장에서 같은 가격을 지불 받을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내일 국내에 필요한 전력이 100이라면 90은 발전 자원으로, 10은 수요관리 자원으로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 등 발전설비를 늘리거나 ▦보조금을 동원한 수요관리를 통해 최대 전력수요를 감축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간 설비를 늘리는 정책이 우선시됐다면 앞으로는 근본적으로 전력 수요를 감축하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당국의 한 관계자는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발전소를 계속해서 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현실"이라며 "이제 전력공급을 늘리는 비용보다 전력을 아끼는 비용이 더 저렴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만큼 정책의 틀을 바꿔야 될 필요성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활동 중인 수요관리사업자는 KTㆍ벽산파워ㆍIDRSㆍ삼천리ㆍ한전KDNㆍ코원에너지ㆍ한국산업기술컨설팅ㆍ젤파워ㆍ서브원ㆍKEDRㆍ코오롱엔솔루션ㆍLG유플러스ㆍLS산전 등 13개 업체다.
수요관리사업자라는 제도가 생긴 것이 불과 1년 전으로 이들은 지금까지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해 사업을 해왔기 때문인데 외형을 넓히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들이 앞으로 전력거래시장에 직접 들어오면서 빌딩 등의 전력을 감축하는 수요관리 사업을 크게 확장하면 신규 발전소나 송전망의 추가 건설 필요성이 적어진다. 자연스레 설비투자비 감소 및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전력 수요관리를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효과도 생긴다. 그간 정부의 수요관리 정책은 일부 대기업의 전력 수요 감축분에 크게 의존해왔는데 수요관리사업자들이 활성화되면 빌딩이나 상가 등 중소 규모의 신규 수요자원을 발굴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개의 빌딩이나 상가를 하나로 묶어 전력망을 관리하고 전력난이 찾아올 때는 수요 감축분을 전력거래시장에 내다 파는 수요관리사업자들이 앞으로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을 쓰는 수요자들 입장에서도 보다 효율적으로 전력을 쓰게 됨으로써 전기요금을 절약하는 효과가 생기고 이 분야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국가적으로도 전력 수요관리 기술이 발달할 수 있다.
정부는 수요관리사업자의 전력거래시장 진출을 허용함으로써 내년께 수요자원을 통해 120만kW가량의 발전자원을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력발전소 1기 물량가량을 수요관리 자원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밖에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설치 확대 등 다양한 수요관리 방안을 담은 종합대책을 제시할 방침이다. 전력 당국 관계자는 "이제는 수요 자원을 '제5의 에너지원'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 방법을 찾을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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