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민영화에 따라 전북은행으로의 피인수를 앞둔 광주은행. 조직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법하지만 요즘 이 은행은 인수합병(M&A)보다 무서운 '정보기술(IT) 공습'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다. IT 업체들이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리는 금융업 영토확장과 온라인뱅크 시대에 뒤처지면 아예 퇴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 은행은 지난달 말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김지현 SK플래닛 상무를 초청해 가전제품·전자기기뿐만 아니라 헬스케어·스마트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한다는 의미의 '사물인터넷(IoT)' 관련 강의를 들었다. 강연에는 김장학 행장을 포함해 전국 지점장들과 본부 직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김 행장은 스타벅스를 찾은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순간 고객정보를 파악해 주문이 나오는 강연 내용을 언급하며 "금융업도 스타벅스처럼 IT와 접목하는 시대가 도래한 만큼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뱅크월렛카카오, 카카오간편결제, 밴드(네이버)를 통한 송금 서비스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뱅킹'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금융회사들이 'IT 배우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외부 IT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행장부터 전 직원까지 금융과 IT 간 융합에 대해 공부하는가 하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SNS 뱅킹 모델이 회사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정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독려하고 금융지주 산하 금융연구소에서 관련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다. 금융권 전반에 'SNS 뱅킹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12일 금융계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 소속 연구원들은 지난 5월 '뱅크 3.0'의 저자 브렛 킹의 신간 '브레이킹 뱅크(Breaking Banks)'를 아마존에서 주문해 내용을 요약하느라 혼을 뺐다.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금융의 혁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기 위한 차원의 조치였다. 연구소는 은행·보험·카드·증권 가리지 않고 지주 내 경영진에게 요약본을 뿌리는 동시에 행원들도 볼 수 있게 인트라넷으로도 해당 자료를 공유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달 들어 각각 △카카오 금융업 진출의 영향 및 시사점 △모바일 금융의 성장과 비금융업 진입 등을 주제로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다.
카드업계도 이달 초 카카오가 카카오간편결제(카카오페이) 사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서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 11일 열린 영업전략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담당하는 스마트채널부장이 사내 부서장들을 대상으로 간편결제 시스템과 알리페이·구글월렛 등의 구동방식과 관련한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했다. 신한카드는 현재 카카오간편결제와 관련해 자체 보안성 검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카카오페이 도입시 내부 시스템과의 충돌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카드사 수장들의 간편결제에 대한 관심은 더 노골적이다. 김덕수 KB국민카드 사장은 같은 날 해당 부서에 카카오의 금융업 진출과 관련해 카드사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분석해보라는 내용을 해당 부서에 지시해 놓은 상황이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컨버전스추진부를 비롯해 업무지원부, 전산부서 등 관련 부서가 협의해서 카카오페이 도입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우리카드 사장도 12일 오전 경영협의회에서 기획조사팀장으로부터 카카오페이 현황파악 및 향후 전망을 보고 받았다.
우리카드는 결제 기회 확대 차원에서 카카오페이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LG CNS 엠페이에 대한 자체 보안 심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카드사는 자체 간편결제시스템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BC카드는 지난 2012년부터 준비해왔던 간편결제서비스 '페이올'을 올해 2월 출시했다. 페이올은 액티브X 또는 애플리케이션 설치 없이 최초 카드정보와 비밀번호 등록하면 추후 물건 구매 시 설정된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간편결제시스템이다. 현재 △홈쇼핑(현대, CJ, GS) △온라인 쇼핑몰(11번가, 옥션, G마켓) △포털사이트(네이버, 다음) △인터넷 서점(교보문고) 등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금융권의 IT배우기 열풍은 최고경영자(CEO)들의 영업 전략에 직접 투영되고 있다.
'마당발'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오프라인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순우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올 들어 아웃바운드 마케팅을 강화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익기반 창출 채널로 활용하기 위해 스마트금융사업단 내 고객마케팅센터를 배치하는 등 스마트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연초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이 회장은 "스마트기기 등 타업종과의 컨버전스 마케팅을 통해 수익성 모델을 발굴하고 비대면채널인 온라인마켓의 빠른 성장세를 감안한 시스템 및 상품구축을 통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IT금융'의 속도가 너무 빨라 겁이 난다"고 토로하며 "따로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 시대에 맞는 CEO인지에 회의감까지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