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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過猶不及)의 미학

최근 한국경제에는 가계부채 문제가 크나큰 화두로 등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채 규모는 급증세를 나타내 97년 말 211조원에서 올 10월 말 현재 420조원으로 뛰어올랐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계부채 상환능력이 약화되는 추세가 역력하다. 카드 연체율의 급상승세는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9개 전업 카드사의 연체율은 9월 말 현재 9.2%로 2001년 말 5.8%, 올해 6월 말 7.9%에 비해 급상승세를 보이고있다. 가계 부문의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금융자산을 금융부채로 나눈 비율도 올 6월 현재 2.2배로 프랑스(5.5배)나 미국(4.2배)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가계 부문의 부채상환능력 약화는 금융부실로 이어져 금융불안을 유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매우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부동산시장의 과열현상도 가계부채 증가와 상관관계가 커보인다. 가계 부문은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은 자금을 주택이나 토지 등의 매입에 상당 부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다시 가계 부문에서 부동산 매입을 위해 경쟁적으로 자금대출에 나섬으로써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지금부터라도 과도한 가계부채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점은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바람직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다음의 세가지는 사전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정책수단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동원된 정책수단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둘째, 정책수단의 동원 범위도 적절해야 한다. 빈대 한마리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셋째, 정책실시가 시기적으로 적절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최근 정책당국은 부동산투기와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시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놓고 있다.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은행과 보험사의 주택담보대출한도 축소, 은행채무에 대한 개인의 연대보증한도 축소 등과 같은 조치를 실시했다. 또 무분별한 카드대출 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카드사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은 금리가 거의 사상 최저 수준을 맴돌고 있는 가운데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려 있다는 데 근본원인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부동산시장의 과열현상과 가계부채 급증현상을 대증요법만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금리인상ㆍ통화환수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실시하지 않은 채 대증요법적인 정책수단만 동원하더라도 가계부채 억제와 부동산거품 제거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이미 시중에 과도하게 흘러 다니고 있는 유동성이 다른 곳으로 몰려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둬야 하겠다. 주택담보 대출비율의 인하, 일률적인 카드사 건전성 규제강화 등과 같은 정책수단들이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시장기능의 작동을 저해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온 가계대출 억제 조치들이 부동산투기 억제 조치들과 맞물리면서 가계 부문을 지나치게 몰아친 측면이 있다. 그 결과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개인들을 중심으로 제도권 금융창구가 막힌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앞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의 빚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대출자금 상환을 위해 부동산이나 주식처분에 나설 경우 자산가격이 급락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이번 정부의 조치들은 정책실시의 타이밍 면에서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최근 들어 국내경기의 회복세가 약화되는 조짐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국내경기를 지탱해왔던 소비와 건설투자의 둔화 추세가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향후 수출 여건도 그다지 밝지 못한 편이다. 미국ㆍ일본ㆍEU 등 세계경제의 3대 축이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발발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경제환경에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서 가계 부문이 이처럼 융단폭격을 맞고 지나치게 위축될 경우 국내경기의 회복은 상당기간 지연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발표했던 정책수단들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또 설령 정책당국이 선택한 정책수단이 적절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거의 동시에 융단폭격식으로 추진하는 痼?나은지 아니면 시기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나을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보인다. 지금은 '너무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다. 구영훈 (롯데경제연구소장ㆍ경제학박사)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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