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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중국 춘추시대 진(晋)의 문공(文公)은 19년 간의 오랜 망명생활 끝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선정을 펴고 국력을 튼튼히 하여 마침내 제후들 위에 군림하는 패자(覇者)가 된 인물이다. 그는 정치의 기본이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데 있다고 믿었다. 특히 자신은 오랜 기간 나라를 떠나 있었으므로 믿을 수 있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원(原)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성을 공격하는 병사들에게 3일 안으로 싸움을 끝내겠다고 선언하고 그 3일이 되자 승리가 눈에 보이는데도 철군을 명하여 약속을 지켰다.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진나라에서는 상거래에서도 남을 속이는 일이 없어졌다고 좌전(左傳)은 전하고 있다. 믿음(信)이 정치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기록이나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공자(孔子)께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과제로 군비(軍備)나 식량보다 믿음(信)을 꼽았다는 얘기나 중국 진(秦)나라 재상 상앙이 새로운 법령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막대기를 옮기는 하찮은 일에 상금을 걸고 그 약속을 지켰다는 일화 등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세월 강조 돼온 신뢰의 중요성이 지금도 외면당하는 일이 너무 잦은 듯 하다. 공신력이 높은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만 해도 엔론, 월드컴등 몇몇 기업의 회계부정에서 비롯된 불신풍조가 주가폭락 금융불안 정치불신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지구촌규모의 경제위기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회계부정이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미국 정치권이 연계된 신뢰훼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미국뿐이 아니다. 온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보기 민망한 책임공방을 벌리고 있는 우리와 중국 사이의 마늘협상문제도 마늘재배농가들의 반발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는 정부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다. 또 정부가 보증까지 서며 은행들의 등을 밀어 러시아에 돈을 빌려주게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처사도 관치금융의 시비 이전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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