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총선압승에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복귀로 향후 4년간의 권력구도는 일단 확실해졌다. 재계는 정부와 ‘코드’가 맞든, 맞지 않든 ‘한국호’라는 배를 함께 이끌어가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진 바다(경제상황)에 격랑이 일고 있기 때문에 성격차이 또는 생각차이를 이유로 서로 밀쳐낼 여유나 명분도 없다. 따라서 노 대통령 복귀 이후 재계는 정부와 적극적인 화해를 모색할 것으로 예측된다. 당장 탄핵심판 선고 하루 전인 지난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장단회의를 열고 “제도적인 여건이 어렵다고 해도 조건을 달지 않고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규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재계의 ‘동거’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격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가 결사반대하고 있는 재벌개혁 문제에서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적지않은 잡음이 예상된다.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계좌추적권 부활, 금융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축소 등을 골자로 한 공정법에 대한 재계의 반대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성장론 힘 얻으면 '밀월'=
경제회생이라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정부ㆍ여당이 재벌개혁을 유보한다면 정ㆍ재계는 ‘밀월관계’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여권에서 일고 있는 민생정치ㆍ실용주의 주장에 얼마나 무게가 실릴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중국의 경우 분배의 균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면서도 경제와 민생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분배는 잠시(100년 이상) 접고 성장에 집중하는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채택, 경제재건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ㆍ재계의 관계가 ‘밀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정부의 개혁은 ▦공직사회 부패척결 ▦역사 바로잡기 ▦언론개혁 등 사회개혁에 집중되고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경제개혁은 거의 문제 삼지 않으면서 정ㆍ재계의 허니문 기간은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감정싸움 때는 '파경' 가능성=
여권에서 개혁의 당위성이 힘을 얻고 이에 따라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추진될 경우 재계와의 협력적 관계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과거처럼 정부가 경제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도, 수단도 전혀 없는 반면 경제권력은 상위 10개 기업에 쏠려 있어 재벌개혁은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개혁의 칼 끝이 총수가족의 지배구조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모아지면 재계의 결사저항으로 불안한 동거마저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공정위의 금융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축소 방침에 대해 삼성이 “삼성전자가 외국에 넘어갈 수 있다. 본사가 미국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며 위기론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나왔다.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투자여력의 80%를 10대 기업이 갖고 있고 이중 80%가 5대 기업에 집중돼 있다”며 재벌의 힘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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