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면책 규정의 보험약관이 자살을 유도하는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살이 증가,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가운데 사망보험 가입자들이 가입 2년 후에 자살건수가 급증, 보험제도의 결함이 지적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사망보험의 보험금 지급 면책기간이 2년으로 짧은 것이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면책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16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ㆍ대한ㆍ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 3사의 사망보험 가입자 중 지난 2000년 이후 자살에 따른 보험금 지급건수와 보험금 지급규모를 집계한 결과 경제가 어려워진 2003년부터 자살사고와 보험금 지급액이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자살사고 건수는 2,884건으로 155억9,000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돼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03년에는 3,923건에 314억2,000만원으로 건수로는 36.0%, 보험금은 무려 101.5% 늘었다. 지난해에도 사고건수는 4,348건으로 전년보다 10.8% 늘었으며 지급보험금은 448억6,000만원으로 42.7% 증가했다.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3년도 이후 급증한 사망보험 가입자의 자살건수에는 최근 늘어만가는 자살자 통계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며 “여기에 종신보험과 같이 사망보험금 규모가 큰 상품이 2000년 들어 많이 판매됐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액수가 더욱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대형 생보사가 자사 사망보험 계약 중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자살로 보험금이 지급된 계약의 사고발생 시점을 조사한 결과 보험가입 후 2~3년 내에 일어난 사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보험가입 후 1년 이내 사고는 1,013건, 1~2년 917건에서 2~3년 사이에는 1,172건으로 증가했다. 이후 3~4년 1,013건, 4~5년 818건 등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현행 보험약관상에는 사망보험 가입 후 2년이 경과하기 전에 자살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살에 대한 면책기간이 끝나는 2년 이후 자살로 보험금이 지급된 건수가 늘었다가 다시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며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사망보험상품의 면책기간과 자살에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는 일부 보험계약자들이 사망보험금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업계 일각에서는 보험금이 한 개인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사회적 이슈가 된 자살 급증이 보험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자살에 대한 보험사의 면책기간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사망자 가운데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1,000명에 이르렀다. 이는 암ㆍ뇌혈관질환ㆍ심장질환ㆍ당뇨병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삼성금융연구소의 김형기 박사는 “지난해 일본이 자살에 대한 면책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프랑스도 이에 앞서 2년에서 3년으로 면책기간을 확대했다”며 “선진국에서처럼 면책기간 확대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부 보험 가입자들의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근 금융감독원 상품계리실장은 “아직 면책기간 확대가 필요할 만큼 보험금을 노린 의도적인 사고는 많지 않다”며 “그러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앞으로의 추세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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