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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이해하는 지혜
입력2004-01-14 00:00:00
수정
2004.01.14 00:00:00
나는 가끔 고등학교 때 만났던 수학 선생님을 생각한다.
그분은 어느 날 우리들에게 숙제로 해오라며 문제지를 내주셨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가득 차 있었다.
2+2=2X2=( )
2+2+2=2X3=( )
2+2+2+2=2X4=( )….
문제지를 받은 우리들은 어이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나 풀어야 할 문제가 한 페이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너무나 쉬운 숙제에 쾌재를 부르며 순식간에 숙제를 해치웠다.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도 비슷한 문제를 거듭 내주셨는데 몇 번 문제지를 받아보니 문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덧셈이 곱셈으로, 곱셈이 다시 제곱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제곱은 세제곱, 네제곱으로 해서 지수함수, 로그함수로 연결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하는 것이 선생님의 방법이었는데 학생들의 눈높이가 제각각 다르다 보니 아예 가능한 한 밑바닥 수준에서 시작하신 것이었다.
선생님의 방법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효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수업 이후로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수학을 싫어하던 내가 수학 없이는 공부할 수 없는 공과대학에 들어가게 됐고 나중에는 대학원까지 마치게 됐다. 그리고 아직도 공학이라는 분야가 매우 흥미있고 재미있는 분야로 여겨지며 할 수만 있다면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공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듯한 기업경영을 하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서 “모든 문제를 공학적으로 사고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보면 그 선생님의 학생 수준에 맞춘 수업방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인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은 `커뮤니케이션은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상대방의 인식에 맞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력은 매우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을 사용하는 대신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가장 중요한 것을 상대방에게 틀림이 없이 전달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반드시 이 방법을 써야 한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직원들로 하여금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문제해결이라는 교육과정을 개설,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개설되려면 두 개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 하나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주장하는 이론을 사용, 회사 내의 실제 문제를 하나 이상 해결해야 하며 그 해결 사례를 토대로 작성한 교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사례를 만든 사람이 강사가 된다는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과정을 개설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일단 과정이 개설되면 그 효과는 실로 놀랍다. 예를 들면 문제해결 과정의 하나인 제약이론(TOC)의 경우 그 사례를 기초로 교육과정을 개설해 최초로 교육을 한 것이 지난 2002년 여름이었고, 수료생 가운데서 자기의 문제해결 사례를 만들게 된 것은 2002년 가을이었다. 최초의 수강생을 배출하고 그 수강생이 배운 것을 사용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무려 1년 반이 걸렸다.
그러나 2003년은 양상이 달랐다. 여러 개의 사례와 그동안 길러진 강사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각각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문제를 해결해놓은 것을 보는 것보다 이해하기 쉬운 일은 없다. 동료가 성취한 문제해결 사례는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의 수준에 가장 잘 맞춰진 교육이기 때문이다. 제일 영향이 큰 부문은 생산 부문이었는데 `납기도 단축되고 품질도 향상됐는데, 비용은 오히려 줄었다`는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동료들을 지도한 강사들이 그들의 상사에게 보내는 e메일에서 확인됐는데 `아무개 대리는 입사 후 10년을 함께 지내왔지만 지금처럼 자신감에 차 있고 일에 의욕을 보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배워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스스로의 능력에 놀라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변화가 각 사람에게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학생의 수준에 맞춘 교육과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이해로 말미암아 견고해지며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온갖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워진다.” 솔로몬이 얘기했던 집을 국가ㆍ기업ㆍ가정 그리고 개인간의 관계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솔로몬이 말한 `이해`라는 것은 상대방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상대방의 인식을 알고 거기에 맞추는 커뮤니케이션은 비록 더디고 힘든 면이 있지만 국가ㆍ기업ㆍ가정 혹은 개인간의 관계를 견고히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장광규 <이랜드시스템즈 대표이사ㆍ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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