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벤처기업의 몰락을 직접 겪은 경험이 큰 공부가 됐습니다. 작지만 강한 기업, 무엇보다 영속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올해로 11년째 영상장비 전문기업 디지털존을 이끌고 있는 심상원(46ㆍ사진) 대표이사는 발전을 위한 도전과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신중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90년대 벤처 1세대 기업으로 각광받던 두인전자에 입사해 98년 회사가 최종 부도날 때까지 기업의 흥망을 몸소 겪었던 그다. 외환위기 이후 직원 3명으로 시작해 HD영상재생기와 분배기 등 디지털 영상기기의 B2B 시장을 선도해 온 디지털존은 이후 11년 동안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착실하게 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아웃소싱으로 이뤄지는 100% 국내공장 생산, 철저한 재고관리, 전 직원들에게 대표 접대비까지 공개하는 투명성을 중시하는 것이 심 사장의 경영방침이다. 특히 제품 사이클에 대한 관리는 철저하다. 구로 디지털단지에 위치한 디지털존은 언제든지 눈으로 재고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재고관리 및 제품 관리에 넓은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할애하고 있다. 재고 누적은 자금악화와 막대한 경영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또한 두인전자 시절의 경험이 그에게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생산되는 디지털존의 제품은 현재 LG전자와 소니 등 세계 주요 LCD 업체의 대리점과 미국 베스트바이 등 유통점, 미술관 등 생활 곳곳에서 소비자들이 선명한 풀HD 영상을 체험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B2B라 시장 자체가 크지는 않지만 LCD나 LED TV 등을 판매하는 매장에는 거의 들어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심 사장의 설명이다. 올해는 지금까지의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주력제품의 대규모 신규공급 계약 체결에 성공한 데다, 3차원 입체영상(3D) 시장 확대와 함께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 사장은 "4월부터 신규 거래처에 대한 대규모 공급이 시작되고 6월에는 현재 개발중인 멀티비전 3D플레이어도 선보일 예정"이라며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164억원보다 대폭 늘어난 26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9월께는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한 B2C 시장에도 신규 진출해 본격적인 도약에 나설 계획이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선보일 B2C 시장 첫 진출 제품은 스마트폰 주변기기다. 심 사장은 "현업에 만족하는 회사는 언젠가 망할 수밖에 없다"며 "기존 주력제품을 캐시카우로 두면서 사내 벤처를 육성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사장은 직원들이 내는 신규사업 아이디어를 검토해 사업성이 보일 경우 해당 직원에게 1~2명의 직원을 붙여서 구체적인 사업 기획을 하게끔 한다. 이 단계에서 가능성이 엿보이면 회사 차원의 투자가 이뤄져 독립된 사업부를 꾸려 분사를 시켜 준다. 독립채산제를 통해 성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투자는 필수지만 회사도 적잖은 지원을 해 주고, 실패하면 회사를 접고 직원들은 디지털존으로 복귀시킨다. 실제로 지난해 이같은 과정을 통해 인터넷회사가 설립됐다가 실패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현재도 B2C 시장 진출을 위해 2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며 이 가운데 하나가 오는 9월 제품화로 구현될 예정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별도 사업부로 분리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심 사장은 "이 같은 시도가 실패로 끝나도 회사 입장에서 절대로 손실은 아니다"라며 "다만 그로 인한 자금손실은 회사 규모의 10% 이내라는 원칙을 세워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독립채산제를 장기적으로 시스템화한다면 회사는 꾸준히 도약의 기회를 갖게 된 다는 것이 심 사장의 믿음이다. 여기에 지난 2년간 회사의 발목을 잡아 온 키코(KIKO) 계약도 지난 3월5일 만료됐다. 30억원 가량의 손실이 난 데다 아직 소송도 진행 중이지만, 이미 지난해에 손실을 모두 털어버린데다 가처분소송에서도 승소판결을 받았던 터라 "이제 마음은 홀가분해졌다"는 것이 심 사장의 심경이다. 덕분에 작년에는 12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올해는 모든 악재를 털어내고 가벼운 발걸음을 할 수 있게 됐다. 심 사장은 "수출비중이 70~80%라 최근에는 원화 강세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올해 환율기준을 달러당 1,000원으로 보수적으로 잡아둔 상태"라며 "환율에 회사가 좌지우지 돼서는 안 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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