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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시대의 흐름

국회에서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또 무산됐다. 국회에서 FTA 체결과 관련된 국가 이익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다소의 우여곡절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FTA 그 자체를 보는 시각만은 정확해야 한다. FTA는 이제 시대의 대세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FTA의 열풍에 휩싸여 있는데 우리나라만 시대의 대세에 역류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미 통상현장에서 FTA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교역 상대국간에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제거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교역과 투자의 기회를 배타적으로 확보하는 무기로도 작동하고 있다. FTA로 중무장하지 않은 나라의 기업들은 이제 통상전쟁에서 패퇴할 수밖에 없다. 중무장하고 나오는 상대방을 맨주먹으로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이다. FTA를 체결하고 안하고는 바로 그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무역을 통해 챙길 수 있는 이익은 놓치고, 소외된 역외국의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FTA가 전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는데 우리만 일부러 `왕따`를 자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날 선진국이나 개도국을 막론하고 심지어는 사회주의 국가들까지도 FTA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 국가간에 협정을 맺으면 역내 교류와 경제협력이 심화되게 마련이다. 반면 FTA에 참여하지 못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진다. 역내 국가간에 강력한 블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통상현장에서 블록은 전쟁터의 요새나 다름없다. 그만큼 시장에 침투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차지하고 있던 시장도 내놓고 패퇴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도 이러한 피해를 면하기 위해 FTA를 서두르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맨 먼저 FTA를 추진하는 칠레는 이미 세계 주요국과 34개의 FTA를 맺은 나라다. 한국과의 FTA 체결이 그렇게 절박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라다. 그러나 우리가 멈칫거리는 사이에 칠레는 신속하게 처리하고 나섰다. 수십 개의 요새를 갖추고도 새로운 참호를 파는 데 그렇게 재빠를 수가 없다. 그냥 남의 나라 일인 양 구경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통상전쟁의 현장이 그만큼 긴박하고 다급한 지경인데 우리만 이를 모른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와 교역규모가 비슷한 멕시코도 이미 32개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두 나라와만 FTA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여유만만이다. 비단 칠레나 멕시코뿐이랴.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대세에 둔감하다는 데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FTA는 다자협정과 달리 체결상대국을 선택할 수 있다.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와 협정을 체결하면 시장개방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교역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마련된다. 칠레와의 FTA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의의가 큰 출발점이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일본ㆍ싱가포르와의 협정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주요 교역상대국 대부분과의 FTA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으니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장차 우리의 통상전략, 우리 산업의 해외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가 크다. 앞으로 통상전선에서 전해오는 패전 소식의 상당 부분은 FTA 역외국으로서 당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무역역군들이 세계시장에서 패잔병의 신세가 되기 전에 FTA의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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