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가 계열사들 간에 벌어진 법적 공방을 두 회사 오너들의 통큰 결단을 통해 모두 끝내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재계를 대표하는 두 그룹이 갈등을 넘어 창조적 협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두 그룹 최고경영진이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소송보다 대화로 풀기로 약속해 양사가 발전적 협력관계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두 회사를 괴롭혀온 '특허괴물'이나 애플 등 우리 기업들의 경쟁업체에 맞서 양사가 기술교류 등으로 보다 광범위한 사업적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회사의 화해 선언 이후 "삼성과 LG가 다툼을 벌이면 웃는 쪽은 애플과 구글 같은 글로벌 업체뿐"이라며 "두 회사 간 협력이 강화될수록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삼성과 LG의 전자사업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TV·냉장고 등까지 모두 겹치는 만큼 작게는 기술제휴, 크게는 공동구매·생산까지 협력을 강화할 분야가 많다고 보고 있다.
두 회사가 각각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서 1·2위 다툼을 벌일 수 있는 분야라면 지금처럼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글로벌 업체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분야나 제품이 있다면 손을 잡고 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물인터넷(IoT) 같은 최첨단 분야는 초기 대형투자가 성패를 좌우하는데 두 회사가 힘을 합친다면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 역시 "10여년 전 양사가 교차구매 방식으로 서로의 부품을 구매한 일이 있다"며 "아직 양사의 협력강화를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신뢰를 회복한다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사가 수십년을 이어온 앙숙관계지만 일부 사장 등 최고경영진은 사석에서 만나 '호형호제' 할 정도로 가깝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번 세탁기 건의 경우 자칫 두 회사 간 감정싸움이 돼 갈등관계로까지 번질 수 있었는데 이쯤에서 정리돼 한숨을 덜었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가전전시회(IFA)를 앞두고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이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며 삼성이 조 사장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데 이어 LG전자도 증거조작 등의 혐의로 삼성을 맞고소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격화된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삼성전자가 세탁기 파손 문제로 LG전자를 압박하자 아우뻘인 LG디스플레이가 자사 기술유출과 관련해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이 기소된 사실을 지적하며 지원에 나섰다. 가전·모바일·디스플레이 등 사업이 대부분 겹치는 삼성과 LG는 이 밖에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유출 논란과 관련해 2건의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2009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공모한 고효율 시스템에어컨 연구개발 사업을 놓고 LG전자 임원이 평가위원을 매수해 삼성 측 사업계획서를 빼돌렸다며 검찰이 뒤늦게 기소한 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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