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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기도 분당의 정자역 부근에는 28층 짜리 사무용 빌딩 하나가 들어섰다. IT서비스업체인 SKC&C의 신사옥 ‘SK U-타워’. 이 건물은 우선 외관부터 첨단의 냄새를 물씬 풍겨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내부 인프라 면에서도 IT기업에 걸맞게 지문인식, 인터넷 전화 등 각종 첨단 기능을 두루 갖췄다. 덕분에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 인터넷산업을 이끌고 있는 NHN까지 입주해 있다. 하지만 이 사무실이 주목 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사내에 어린이집이나 대형 헬스장 등을 비롯해 기(氣) 수련실, 여성 휴게실, 수면실, 도서관, 의무실, 야외 옥상 등 복지시설이 즐비한 웰빙 건물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의 변기도 당연히(?) 비데가 설치돼 있다. 한마디로 집인지 사무실인지 헷갈리는‘홈퍼니(Home+Company)’를 구현한 셈이다. 직원들의 ‘편안함’이 곧 기업의 또 다른 생산력이고 경쟁력임을 일깨워 주는 미래형 웰빙 사무실을 살짝 들여 다 보았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주부 사원 이남희(31ㆍSKC&C 구매팀 과장)씨. 그녀는 오늘도 이른 아침 두 살짜리 지호의 손을 잡고 출근 길에 나섰다. 하지만 여느 일하는 엄마들이 집 근처의 놀이방에 들르는 것과 달리 그녀는 지호와 곧장 회사로 향한다. 얼마 후 그녀가 들어선 곳은 SK U-타워 3층. 이곳은 이미 이 과장처럼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엄마 사원’들로 분주하다. 엄마 곁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떼 쓰는 아이의 모습은 일반 놀이방의 풍경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곳은 회사측이 여성인력의 보육문제 해결을 위해 사옥 내 60평을 할애해 직접 어린이집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이곳에선 만 5세 이하의 어린이 36명이 하루를 보낸다. 위탁운영이지만 회사측이 일정 비용을 지원해 월 이용료는 일반 시설에 비해 최고 50% 가량 저렴하다. 더구나 사내 놀이방은 바쁜 엄마를 둔 덕분에 아침밥을 거를지 모르는 아이를 위해 식사까지 꼬박 꼬박 챙겨준다. 세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곳은 원장을 비롯해 8명의 교사와 영양사 등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SKC&C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 과장은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좋다”며 “사내 보육원이 일하는 주부 사원 입장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흡족해 한다. 오전 10시. 한참 일하던 이 과장이 책상에서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향한다. 이 과장이 발길을 향한 곳은 깔끔하게 꾸며진 사내 도서관 ‘티움(Tioom)’. 업무 도중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거나 짬짬이 필요한 책이 있으면 언제라도 들러 무료로 책을 보거나 빌린다. 40평에 카페처럼 꾸며진 이곳에는 경영과 경제, IT, 문학, 일반 소설 등 4,000여권의 장서가 책장에 꼽혀 있다. ‘새로운 사고의 싹을 틔운다’는 뜻의 ‘티움’을 이용하는 직원들은 하루 평균 70여명 수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회사측은 매주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40권의 책을 새로 구매하며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이 과장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당연히 식당으로 향할 줄 알았던 이 과장의 발길이 멈춰선 장소는 뜻밖이다. ‘심신수련실’. 이 과장보다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직원들이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수련을 준비중이다. 신입 사원으로부터, 배가 나온 임신부 그리고 이마가 훤칠하게 벗겨진 상급 간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점심시간 중 30여분을 할애해 기체조를 배우고 있다. 물론 수강 비용은 따로 없다. 무료다. 오후 3시. 이 과장과 여성 직원 몇몇이 손에 커피를 들고 일어서더니 여성전용 휴게실로 향한다. 금남(禁男)의 공간이자 수다의 장이다. 깔끔한 분위기에 편안한 쇼파, 탁자들이 놓여 있다. 휴게실 안의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깨끗한 침대 10여개 나란히 놓여 있다. 수면실이다. 물론 남성전용 수면실도 다른 공간에 20여석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오후 6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직장인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순간이다. 이 과장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더니 놀이방으로 가 아이를 데리고 귀가할 모양이다. 하지만 옆 남자 동료는 운동이라도 할 것인지 몇 가지를 챙긴다. 사내 헬스장에 간다고 한다. 남자 동료를 따라 간 6층에 위치한 헬스장. 100여명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에 24대의 LCD를 장착한 러닝머신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다양한 운동기구와 샤워실, 전문 지도강사 등 전문 헬스클럽 못지 않는 고급 시설임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 달 이용료는 고작 2만원. 당연히 인기 만점이다. 이 헬스장은 400여명의 직원들이 회원으로 등록해 애용중이다. 현대 사회의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이 집보다는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게 추세다. 따라서 ‘삶을 위한 일인지 일을 위한 삶인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는 이들도 있다. 집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사무실, 우리의 삶과 회사의 경쟁력을 한꺼번에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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