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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넘었어요? 2년은 안 채우려고 했는데.” 12일(이하 한국시간) 메이저 경기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우승으로 2년1개월의 슬럼프를 벗어난 박세리(29ㆍCJ)의 첫 마디는 경쾌한 농담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소감은 고비고비 마음 고생을 접어두며 스스로를 키워 온 데뷔 9년 차 골퍼의 성숙함이 물씬 묻어났다. “아, 이런 거구나, 그 동안 왜 그런 (슬럼프)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매일 아침 골프를 왜 해야 하나 생각했던 지난 세월이 짧은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맨발 투혼을 불사르며 사투 끝에 우승했던 98년 US오픈보다 더 벅차고 가슴 뿌듯했다”는 말도 이어졌다. 눈물이 쏟아진 것도, 우승컵을 품에 안고 혼자 살짝 ‘정말 행복하다’고 중얼거린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박세리는 눈물을 떨군 이유를 하나 더 붙였다. “지치지 않게, 또 포기하지 않게 진심으로 응원해 준 팬들이 떠올랐다”는 것. “잘 나갈 때는 몰랐는데 볼이 안 맞고 보니 한결같이 곁을 지켜 주는 팬들 덕분에 내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간에 누군가를 향해 “아줌마는 내 옆에 앉으시고”하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적지 않은 팬들이 직접 응원을 간 모양이었다. 이렇게 ‘언제까지 기다려 줄 것 같은’ 팬들 때문에 박세리는 여유를 찾았다. 동계 훈련 때 킥복싱과 태권도로 체력과 심력(心力)을 키울 수 있었고 이번 대회도 내내 싱글벙글 웃으며 플레이할 수 있었다. # 포기하지 않게 끝까지 응원한 팬들에 감사… 연장전 들어가며 "지지말자는 생각만했다"
“특별히 우승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팬들의 격려처럼 ‘언젠가는 돌아오겠지’하며 마음 편이 먹었던 덕분에 혼자 신나서 경기를 치렀다”는 것이 박세리의 말. “리더 보드를 볼라치면 금방 바뀌고 해서 내가 선두인 줄 몰랐다”는 그는 “17번홀 버디를 하고 막연히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마지막 홀 보기를 했을 때도, 웹과 연장에 나가게 됐을 때도 “어제도 그랬던 것 인양 덤덤했다”는 박세리. 다만 “플레이 그 자체를 즐긴 덕인지 연장 전 세컨 샷을 성공시킨 뒤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었다”고 했다. “스무 번 넘게 우승하면서 한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라 나도 놀랐다”고도 했다. 박세리는 연장이 결정된 직후 “지면 안 된다고 생각 했다”며 여전한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99년 2번을 포함해 모두 3번 웹과 연장을 치러 모두 이겼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몰랐다”며 “지지 말자는 생각만 했다”고 한층 강해진 집중력을 내비쳤다. 우승 확정 후 웹이 자신을 안으며 ‘다시 돌아 와 기쁘다’, ‘너무 좋아 보인다’고 축하해줬다는 박세리는 “지난번 나비스코 챔피언십 때 내가 웹에게 해줬던 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슬럼프를 겪고 우승한 웹이 너무나 대견하고 보기 좋아 진심으로 축하했는데 오늘 자신도 똑 같은 말을 들었다는 것. “겪어 본 선수끼리 통하는 게 있다”는 설명이다. 박세리는 앞으로 계획을 묻자 “이제 1주일은 맘껏 쉰다”며 거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고 새로 태어난 ‘골프 여왕’ 박세리가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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