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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콩 손의 노래
입력2002-08-29 00:00:00
수정
2002.08.29 00:00:00
나는 매년 이맘 때면 베트남 호치민 시를 여행한다. 금년에는 단체에 끼어서 갔다. 그러나 호치민 시에서 나는 가슴 한 쪽이 빈 듯했다. 찐 콩 손을 만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4월1일 정오께 그가 죽은 것이다. 그는 분단 시대 사이공 시절에서 통일된 베트남 시절에 걸쳐 민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은 민요 작곡가이다. 그가 죽자 베트남의 노동(라오동)신문, 인민(난단)일보, 사이공 해방(지아이풍)일보 등 당기관지를 비롯하여 모든 언론이 추모 기사를 실었다. 인터넷에도 추모의 글이 수 없이 올랐다. 그는 '평화의 메시지를 문인보다 더 잘 전달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또 '반전 메시지를 심금 울리게 전달한 민요 작곡가'로 기억된다. 베트남 인터넷 사이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를 뽑는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찐 콩 손은 점유율 60%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작곡가들은 10∼20% 정도씩 분점했다. 찐 콩 손은 내가 27년에 걸쳐 '종단적'으로 취재한 주인공이다. 사이공 주재 특파원 시절인 1973년 1월 처음 그를 인터뷰하여 그가 작사.작곡한 민요에 분단의 아픔이 녹아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가 노래한 '후에-사이공-하노이'에서 '서울-개성-평양'을 잇는 통일열차의 기적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를 다시 찾은 것은 14년 만인 1989년이었다. 통일된 베트남의 호치민 시에 들어가 사회주의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그를 찾아내 다시 만났다. 5년이 흘렀다. 1994년 9월 세 번째 찐 콩 손을 만났을 때 그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나는 찐 콩 손의 안주는 베트남의 정경분리 개방정책이 성공적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여겼다. 그리고 2000년 7월 그와 네 번째로 재회했다. 그는 여전히 호치민 시 3구 팜 넉 탁 거리 47번지, 호아수 나무 흰 꽃이 피어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본래 병약한 그는 60대에 들어서 미래의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풍란의 길이 지나갔다/ 가자 평화의 길이 오고 있다/ 미래의 길로 가자 파도의 길/ 비오는 새벽길/ 잎이 푸른 색깔처럼/ 푸른 영혼을 부르는 길." 찐 콩 손은 베트남의 한 지식인으로서 분단과 통일 또 사회주의 개방체제로 이어져온 한 시대를 어떻게 굽이굽이 살아 왔는지, 역정을 보여주었다. 나는 앞으로 몇 년 후에 그의 삶이 또 어떤 굽이를 도는가, 계속해서 만나 얘기를 나눌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만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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