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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첨단 금융 기법의 그늘
입력2004-02-16 00:00:00
수정
2004.02.16 00:00:00
강동호 기자
■ 전염성 탐욕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필맥 펴냄
“탐욕이 우리의 경제계를 휘어잡은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이 과거보다 더 커진 것은 아니다. 다만 거리낌없이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2002년 7월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한 증언이다.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사고 파는 단순한 형태의 증권 거래가 80년대 중반 이후 선물, 옵션, 구조화 금융 등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한 복잡한 형태의 금융 거래로 발전하면서 자본시장의 위험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경고다. 최근에는 각국 통화에 대해서까지 현물 거래뿐 아니라 선물ㆍ옵션 등 투기적 성격을 띤 매매가 급증하면서 각국의 중앙은행이 통화가치 안정을 놓고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또는 펀드)들과 한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 : How Deceit and Risk Corrupted the Financial Markets)`은 오늘날 `금융공학`이라 일컫는 고도화된 금융기법이 총동원된 전지구적 차원의 금융거래가 투자자 개개인은 물론 세계의 경제시스템을 어떤 위험으로 내몰 수 있는지를 웅변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를 겪기도 한 우리로서는 이 책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국제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세계적인 투자은행들과 펀드들을 통해 증폭되고 한편으로 실현되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이자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법대 교수인 프랭크 파트노이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약 15년동안 미국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에 펼쳐진 각종 금융활극과 시장의 부패 행각을 소설형식을 빌려 서술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 등 투자은행 근무와 변호사로서 증권범죄를 비롯한 여러 금융부정 사건을 다룬 경험을 가지기도 한 저자는 `탐욕 바이러스의 탄생과 발병, 감염과 확산`이라는 특유의 시선으로 금융세계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예컨대 앤디 크리거는 원래 인도 철학을 전공한 학생이었으나 와튼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살로만 브라더스에 통화옵션 트레이더로 취업하면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그는 특정 통화에 대한 매수주문을 내 다른 경쟁자들을 유인한 다음, 이 통화에 대한 반대 방향의 매도주문을 내는 `풋-콜 패리티(Parity)`개념의 투자전략으로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준다. 그는 입사 첫해에 17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매년 그가 거둔 수익의 5~10%를 보너스로 받는 조건으로 뱅커스 트러스트, 퀀텀 펀드 등으로 옮겨 다닌다. 그의 연평균 몸값은 수십만~수백만달러에 달했으며, 87년에 조지 소로스에게 안겨 준 4,200만달러의 이익은 통화옵션 분야에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최고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30대 초반에 은퇴한 그는 현재도 뉴저지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약 4억달러 정도의 자금을 굴리며 연 10~15%대의 수익률을 목표로 조용히 머니게임을 하며 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몇몇 금융거래 천재들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 뒤에 숨겨진 부정(실정법상 불법행위는 아니었을지라도)과 그에 따른 파멸적인 사회경제적 악영향이다. 위 사례에서 크리거가 뱅커스 트러스트를 떠날 때 그의 투자 포지션 가치는 8,000만달러가 모자라는 것으로 밝혀져 회사는 회계장부 조작을 통해 증발한 금액을 서둘러 메워야 했고, 그 손실분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배당을 줄이는 것으로 귀결됐다. 투기적 금융거래의 더 큰 문제는 초과이익을 노리는 거대 펀드가 특정 국가의 통화나 증권시장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할 때 해당국의 경제 시스템이 일시에 붕괴될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주기적으로 남미, 아시아, 유럽, 러시아, 중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무수한 금융위기는 국제 투자은행과 펀드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지난 80년대 중반 국제 금융시장을 무대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탐욕의 바이러스는 2002년 엔론, 월드컴 등 미국내 10여개의 대규모 금융부정 사건이 잇달아 적발되면서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바이러스는 여전히 법규의 허점을 노리며 활동을 재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탐욕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백신법`으로
▲선물ㆍ옵션 등 파생상품에 대해 다른 금융상품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것
▲세세한 법조항보다 정직의 문화를 폭넓게 정착시킬 것
▲신용평가회사들의 과도한 권한과 그들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릴 것
▲트레이더,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회계사들의 금융부정을 반드시 처벌할 것
▲개인 투자자들이 금융자산의 가치 하락에 베팅할 수 있도록 공매도를 장려할 것
▲투자자 스스로가 자신의 리스크를 통제하고 감시할 것 등 6가지 제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탐욕`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는 한 온갖 규제와 통제도 결국은 공념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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