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주식은 한계가 있나 봅니다."
한 증권사 A지점장은 상반기 20~30%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려줬던 고객이 최근 주가폭락으로 수익률이 5%로 줄어들자 모든 주식을 처분해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계좌에 넣어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격매력이 높아진 만큼 저가매수에 나서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최근 시장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A지점장은 "변동성이 심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시에서 발을 빼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정보기술(IT)·조선·철강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해주던 산업들의 성장세가 이어져 저가매수에 나서라고 추천했지만 지금은 이런 종목들을 추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주식 투자자들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주식시장이 연일 전개되면서 시장을 떠나고 있다.
초저금리 장기화로 주식시장이 대안 투자처로 각광 받았지만 최근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자 일단 자금을 빼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회복 우려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이라 저가매수의 유혹도 통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를 반등시킬 확실한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까지는 이처럼 주식시장을 이탈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불투명한 증시에 거래절벽=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래대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증시를 둘러싼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거래절벽'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4조9,531억원으로 전일(4조8,040억원)에 이어 4조원대에 머물렀다. 지난달 19일 7조원대를 기록했던 거래대금에 비하면 단기간에 크게 줄어든 것. 거래량도 3억3,856만주로 지난달 31일 이후 3억주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때 8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던 신용융자잔액 역시 증시 폭락에 감소하고 있다. 7월 말 7조8,074억원(유가증권 3조7,931억원, 코스닥 4조143억원)이었던 신용융자잔액은 지난 1일 기준 6조4,750억원(유가증권 3조1,922억원, 코스닥 3조2,828억원)으로 한 달 사이 1조3,000억원가량 줄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전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다 보니 빚까지 내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신용융자 감소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주변으로 자금이동=증시에서 이탈한 자금은 아직 대부분 고객예탁금에 머물고 있다. 일부 자금은 증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장지수펀드(ETF)와 머니마켓펀드(MMF), CMA 등 단기성 금융투자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보통 고객예탁금이나 단기성 금융투자상품에 돈이 몰린 경우 주식투자를 위한 대기성 자금으로 보고 증시 반등에 무게를 두지만 현재 상황은 이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주식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 주식을 매도한 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장내파생상품 거래예수금을 제외한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일 22조2,558억원으로 7월 말 20조7,948억원에 비해 불과 한 달 사이에 2조원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8월 중순부터 이어져온 투자자예탁금이 줄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대기자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주식을 사기 위한 자금일 수 있지만 반대로 주식을 많이 팔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대기자금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가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래대금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이 증시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투자재개 신호탄은=거래절벽 가능성까지 나올 정도로 증시를 떠난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금리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경기둔화 우려와 미국 금리인상 불확실성이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 미국 금리인상이기 때문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오는 18일(한국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증시 반등과 이에 따른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복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미국이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점진적인 금리인상과 통화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아 4·4분기에 증시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불확실성이 제거된 후에 수출주를 중심으로 주식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투자전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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