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해 사실상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재계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십수조원 이상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데다 앞으로도 매년 지급해야 할 인건비가 늘게 된 탓이다. 당장 기업들은 경영부담 증가에 따른 투자환경 악화,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지난 1988년 이후 노사관행으로 자리잡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판결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면서 투자·고용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총의 전망이다.
경총은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13조원 이상의 추가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초 예상치는 38조원이었지만 "3년치 소급분은 신의·성실에 원칙에 따라 기업별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이 추가돼 그나마 부담을 덜게 됐다.
이날 판결에 따라 각 기업은 앞으로의 부담을 계산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판결문을 분석하는 중이라 구체적인 비용계산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추석 상여금이나 휴가비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은데다 비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의 여부나 직원들의 근무일수에 따른 차등 같은 미묘한 변수가 있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NH농협증권은 18일 보고서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현대자동차의 매출액 중 인건비 비중이 1.3%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LG그룹 관계자도 "인건비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앞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아직 판결만 난 상황인 만큼 앞으로 지켜보면서 대응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부담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총은 통상임금 산정기준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5년간 71만~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들도 이번 판결을 반가워하지는 않는 기색이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임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인 만큼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중소기업 역시 이번 판결에 우려를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그동안 정부의 지침을 근거로 임금을 지급해온 기업들이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법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고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며 "수많은 기업에서 노사갈등이 격화되고 임금 청구소송이 늘어나 경영부담이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들이 최소 14조3,000억원을 일시에 부담하고 매년 3조4,000억원가량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제락 중기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면서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면서 자금난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신규투자·신규채용 중단, 생산손실 등의 연쇄적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현재 180여건에서 최소 수천, 최대 수만 건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경총 관계자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확대 결정으로 노동자가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이 때문에 전체 노조는 물론 노조에 소속한 근로자의 대표 소송, 비노조원 등의 통상임금 소송이 줄을 이으면서 수만 건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앞으로 임금체계 개선이라는 큰 짐을 떠안게 됐다. 고용부가 2008년 근로자 총급여를 분석한 결과 전체 임금 중 기본급의 비율은 54.1%였으며 고정상여금 비율은 기본급의 4분의1이 넘는 15.1%에 달했다.
김성익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상무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며 "다만 그동안 기본급이 낮은 대신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많이 지급하는 임금체계가 유지돼왔는데 재계와 고용부가 협력해 이를 기업들의 부담이 적은 쪽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역시 이날 판결에 대해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새로운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경연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여러 가지여서 다소 혼선이 발생했지만 이번 판결이 혼란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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