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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저녁 서울 신길동 공군회관에선 치열한 응원전이 펼쳐졌다. 쌀쌀한 날씨와 달리 130여명이 자리한 이 곳 열기는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함성과 탄식이 왁자지껄하게 어우러지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을 이렇게 열광시킨 것은 다름 아닌 직경 25cm 경기장에서 펼쳐진 팽이대회. 직원수 10명 미만의 소공인들이 자사의 기술력을 걸고 만든 직경 2cm 이하 미니 팽이로 누가 오래 살아남는지를 겨루는 자리였다.
팽이 오래돌리기는 원심력과 구심력 기술 등 정밀기술을 필요로 한다. 20mm가 안되는 작은 팽이지만 수십년간 다져온 소공인들의 기술력이 집약된 것. 아쉽게 16강전에서 탈락한 유대수 유수기공 대표는 대회를 위해 팽이를 3개나 제작했다. 팽이소재부터 지면과 맞닿는 볼의 크기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았다.
유 대표는 이번 대회를 통해 소공인들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옆집에 누가 일하는지 관심을 갖지 못할 정도로 먹고 살기 바빴던 이들이 팽이라는 소재를 통해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공인경영대학과정을 이수한 1~6기 수강생들이 참여한 '제1회 소공인 팽이기술경진대회'는 소공인들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팀워크를 다지는 자리가 됐다. 대회를 준비한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 회장은 "소공인들은 수십년 동안 대ㆍ중소기업의 만년 임가공업체에 머물러 왔다"며 "여기서 벗어나 우리도 도전하고 협력하면 얼마든지 창의성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알리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또 "팽이대회를 위해 기수별로 모여 수차례 토론을 진행하며 협업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역할분담을 통한 디자인, 설계, 제작과정을 통해 공동체의식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32개 업체가 참여한 이번 대회에서 1, 2위를 차지한 소공인은 내달 일본에서 열리는 '일본팽이기술프리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2년 전부터 열리고 있는 일본대회에 나가 해외 소공인들과 실력을 겨루고, 기술을 교류하게 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첫 대회 우승을 차지한 이원동 한국기계 대표는 "처음에는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려고 했지만 욕심이 생겨 하루 30분씩 연습을 했다"며 물집 잡힌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대표는 "우승보다는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협업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 의미있다"며 "내가 팽이대회를 위해 일주일간 연습한 것처럼 본인이 소외됐다고 느꼈던 문래동 소공인들에게는 아주 큰 변화"라고 미소를 지었다.
소공인진흥협회는 이번 첫 대회를 계기로 2회부터는 전국대회로 규모를 키워 국내 30만개 소공인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방침이다. 곽 회장은 "소공인들에게 독일, 일본, 이태리 등 해외 강소기업 탐방을 정례화하고 전국 소공인의 날을 지정을 건의해 분야별로 기술력과 장인정신이 투철한 명인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녔다. 그는 또 "평균 연령 53세인 소공인들의 육성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독보적인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무장된 소공인들의 가업승계나 기술이전의 단절현상이 초래되고 이대로 사라질 것"이라고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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