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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국가흥망 가른다] <6> 그리스 - 시시포스의 고통

재정긴축·증세에 "못 살겠다"… 신타그마 광장선 연일 시위<br>국영기업 매각등 국가 구조조정… 총인구의 10% 공무원 감원위기… 부가세 올리고 연금 혜택도 줄여<br>"착취 일삼는 트로이카 물러가라" 곳곳서 데모·파업… 후유증 몸살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신타그마 광장 주변에서 노란색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택시시장 개방에 반발해 지난 6월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택시 운전사들은 여름휴가가 끝나는 8월 중순 대규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테네=서정명기자


"그리스 국민을 착취하는 트로이카(IMFㆍEUㆍECB)는 물러가라." "노동자와 젊은이들이여. 이곳으로 집결하자." "우리는 소외된 사람들. 우리의 생존권을 찾으러 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헌법광장). 저녁8시를 넘어서자 군중이 파랑과 하양이 교대로 배치된 그리스 국기와 걸개 그림을 들고 모여든다. 구호와 환호성과 박수가 잇따라 터져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쇠락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중심가에는 고통과 눈물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군중집회를 감시하고 있는 아테네 경찰에게 물었더니 "낮 기온이 39도를 오르내려 낮에는 집회하기가 힘들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는 8월 중순이 되면 신타그마 광장은 데모와 집회의 물결로 다시 넘쳐날 것"이라며 "국민들이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리스 국민들이 '지속 불가능한(unsustainable)' 포퓰리즘 정책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신음하고 있다. 형벌을 받아 영원히 산꼭대기에 무거운 바위를 굴러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공무원들은 대량감원의 위기에 처해 있고 택시 등 서비스 업종은 잇따라 개방되면서 일자리 상실이 불가피하다.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그리스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고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그리스의 자존심인 파르테논 신전으로 올라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중간중간에 걸인들이 관광객들에게 동냥이나 구걸을 하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스는 그렇게 포퓰리즘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그리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과 구조조정의 핵심은 '재정긴축'과 '증세'로 압축된다. 집권여당인 파속과 제1야당인 신민주당이 1980년대부터 정권을 교대로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공부문 공무원 일자리를 대거 늘렸는데 이에 대한 정리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리스 총인구 1,100만명의 10%에 육박하는 100만명이 공무원이다. 제우스 신전 옆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방문해보니 한 층을 관리하는 안내 공무원만도 10명을 훌쩍 넘었다. 관광객보다 안내 공무원이 더 많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관광 가이드인 고르타스 파파도플로스씨는 "그리스 공공부문 종사자의 25%가량은 과잉인력이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안내원들도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다"면서 "정부가 공무원들을 대거 정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는 올해 공공부문 임금삭감을 통해 5억5,000만유로를 확보하고 오는 2012~2015년에는 11억9,000만유로를 추가로 마련할 방침이다. 또 국립병원의 경우 무상으로 제공되는 보건의료비도 2015년까지 17억4,000만유로 감축하고 전액 무상인 대학등록금 등 정부 보조금도 13억4,000만유로가량 줄이기로 했다. 그리스 정부는 IMF와 체결한 강도 높은 긴축방안을 통해 지난해 -9.6%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5년에는 -1.0%까지 줄이기로 했다. 또 국가채무를 경감하고 해외투자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고대유적지 빼고는 국유자산을 다 팔 기세다. 가스ㆍ니켈광산ㆍ선박ㆍ은행ㆍ공항 등은 물론 정부가 보유한 국영기업들도 대거 매물로 나와 있다. 국책연구소 이오베의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매물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서는 한국 기업도 매물 리스트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고 귀띔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선박수주를 위해 그리스에 매달렸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그리스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고통과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야당인 신민주당의 안드레아스 리쿠레조스 사무총장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긴축정책을 통해 2015년까지 284억유로를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이는 그리스 GDP의 10%에 달하는 금액"이라며 "국민들의 시위와 데모가 연일 일어나는 것은 긴축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택시 운전사인 텔리우스씨는 "IMF와의 협약으로 택시 시장이 개방되면 수입은 급감할 것"이라며 "8월 초에 이어 조만간 대규모 파업이 예정돼 있는데 생존권을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택시 운전자들은 택시 허가증을 서민층 집 한채 값에 해당하는 20만유로에 구입했지만 시장이 개방되면 허가증은 종이조각이 되고 만다. 그리스인만 가능했던 관광 가이드도 앞으로는 시장이 개방된다. 재정긴축과 함께 증세도 국민들을 옥죄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기존 21%에서 23%로 올랐고 특별위기부담금(special crisis levy)도 소득에 따라 최고 5%를 내야 한다. 이전에는 연소득이 1만2,000유로에 미달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수혜 대상이 8,000유로로 수정됐다. 은퇴 전 소득의 최고 95%를 받는 연금은 2012년까지 금액이 동결됐고 조기퇴직자에 대한 연금혜택도 대폭 축소됐다. 서울로 치면 시청광장에 해당하는 신타그마 광장에서 만난 요로고스(55)씨는 "교사직을 일찍 은퇴하고 연금으로 풍족하게 살았는데 정부의 연금개혁이 생활고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일자리를 다시 구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정부의 재정긴축과 증세가 속도를 더해가면서 위기감을 느낀 국민들의 저항과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0일 이상 전면파업을 벌였던 택시노조는 8월 말 다시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세금 공무원들도 세금징수를 거부하며 파업에 동참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공공ㆍ민간부문을 대표하는 양대 노총이 지난 1년간 벌인 동시 총파업만도 8차례에 달할 정도이다. 신타그마 광장 옆의 고급 호텔 매니저로 일하는 게오르게씨는 "신타그마 광장은 지난 1년간 긴축과 증세에 항의하는 시위와 데모로 몸살을 앓았다. 구조조정 시작단계에서 이 정도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면서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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