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과거는 묻지 마세요'입니다. 임금체계를 무질서하고 불투명하게 만든 책임을 노사 모두에게 돌리기 위해 소급분 지급 제한, 까다로운 통상임금 요건 등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무시한 채 노사가 마치 'OX 퀴즈' 풀 듯이 상여금이 통상임금이냐 아니냐를 놓고 다툼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난 24일부터 3회에 걸쳐 '뒤로 숨는 정부, 혼란 커지는 노동시장' 시리즈를 게재한 서울경제신문은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해법과 비전을 듣기 위해 최근 박지순(사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정부 산하의 임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노사 전문가다.
그는 먼저 대법원 판결의 핵심을 읽지 못하고 통상임금 범위 자체에만 매달리면서 가중되고 있는 노사의 갈등 양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박 교수는 "기업은 초과근로수당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본급 대신 상여금·수당 등을 늘렸고 수당 신설을 전리품처럼 생각한 노조 역시 여기에 부화뇌동하면서 오늘의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만들어졌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법원의 메시지를 간과한 채 법정 다툼만 계속되면 임금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맥락에서 혼란을 키우고 있는 최근 하급심 판결과 중재자 역할에 실패한 정부에도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그는 "개입의 타이밍을 진작에 놓쳐버린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더 이상 소송 시비가 안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퇴직자에게 일할 지급하지 않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본 최근 부산지법의 판결은 대법원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나올 항소심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기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다시 정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 현장이 다시금 통상임금 소송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 교수의 판단이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사법부의 고민과 판결 이전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입법부의 갈등이 동시에 깊어지면서 기업과 근로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는 말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정리했다. 박 교수는 "법정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일 때도 10년에 걸친 흐름을 두고 단계적으로 진행했다"며 "충분한 유예기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력채용·설비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존폐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신체 크기는 다른데 옷 치수가 하나뿐이면 되겠습니까.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 특히나 신체 사이즈에 따라 옷을 달리 입히는 노동정책이 절실합니다. 입법을 통해 넉넉한 유예기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을 위한 특별법이라도 제정해야 합니다."
박 교수는 정년연장과 관련해서도 정부·국회를 향한 따끔한 비판과 함께 기업·근로자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 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정년연장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정부와 국회가 당위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대안 마련에 소홀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만 적혔을 뿐 임금피크제 미도입 등에 대한 처벌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박 교수는 "개별 노사가 정년을 62~63세로 늘리되 58~59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방안에 합의한다면 함께 '윈윈' 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며 "기업은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 60세를 도입했을 때보다 인건비 부담을 덜고 근로자 역시 약간 적은 월급을 받더라도 더 오래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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