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1순위' 드럼세탁기의 대굴욕
통돌이에 밀린 드럼세탁기[뉴스 포커스] 장기 불황이 바꾼 소비패턴알뜰형 소비 확산 따라 가전부터 車·의류까지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싸고 실용적 제품 인기
정영현기자 yhchung@sed.co.kr
김광수기자 bright@sed.co.kr
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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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방동에 사는 주부 김선희(40)씨는 7년 넘게 쓰던 세탁기를 바꾸기 위해 집 근처 가전매장에 들렀다. 매장에 들어서자 매끈한 디자인에 첨단기능을 갖춘 최신형 드럼세탁기들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10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표를 보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1시간 넘게 가격과 성능을 꼼꼼히 따져본 끝에 결국 김씨는 기본 기능만 갖춘 '통돌이' 세탁기를 선택했다. 얄팍해진 지갑 사정을 감안할 때 세탁기 본래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가격은 드럼세탁기보다 절반가량 싼 제품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장기화된 경기불황이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을 바꿔놓고 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형 소비'가 확산되면서 부가기능을 최소화해 가격은 대폭 낮추되 꼭 필요한 기본 기능을 더욱 강조한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선택되고 있다. 한 가전매장 관계자는 "최첨단 성능은 없지만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저렴한 가격대의 세탁기와 밥솥 판매가 크게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오랜 불황은 가전제품뿐 아니라 자동차 소비패턴까지 바꿔놓았다. 자동차시장에서도 배기량이 적고 사양이 낮은 모델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 가운데 엔진 크기가 가장 작은 2.4모델 판매는 지난해 전체 판매실적의 절반이 넘는 58.4%를 차지했다. 지난 2009년의 11.1%와 비교해 3년 만에 5배 넘게 높아진 것이다. 기아차 K7도 2009년 2.4, 2.7, 3.5모델 중 2.7모델이 3,853대(79.1%)로 가장 많이 팔렸지만 지난해는 2.4모델이 1만2,819대로 77.7%를 차지해 3.0(3,374대)과 3.3(310대)의 판매량을 압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예전에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같은 모델이라도 높은 배기량을 표시하는 엠블럼으로 교체하는 운전자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중형차 이상 급에서는 특히 배기량이 낮은 모델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불황에 따른 소비패턴 변화는 유통업계에서도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백화점에서는 명품ㆍ여성정장ㆍ여성캐주얼ㆍ남성의류 부문이 모두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갑이 얄팍해진 소비자들이 당장 필요 없는 소비재 지출부터 줄이고 있는 탓이다.
반면 가격이 저렴한 SPA(제조ㆍ유통 일괄의류) 브랜드는 지난해 전년 대비 50%가 넘는 활황세를 보여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심리 위축으로 SPAㆍ온라인쇼핑몰 등 저가 채널로 이동하는 의류소비 트렌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장품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은 백화점의 고가 브랜드를 내려놓고 대형마트의 화장품 코너나 지하철역 상점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원브랜드숍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필수 소비재인 식품의 경우 의류나 화장품에 비해 불황의 그늘이 덜하지만 소비부진의 여파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변화가 소형 사이즈 제품과 낱개판매 제품 증가다. 또 외식업계에서는 1,000~2,000원 메뉴 등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일본에서 100엔 메뉴가 잘 나가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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