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이후 기관을 중심으로 회사채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 발행된 회사채 가운데 기관들의 외면으로 팔리지 않은 물량이 2조원을 넘었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수요예측을 실시한 회사채 4조9,250억원 가운데 2조1,270억원이 미달됐다. 전체 발행 물량 가운데 43.18%에 해당하는 물량이 기관으로부터 외면을 받은 셈이다. 미달된 회사채 물량은 인수주간사인 증권사에서 모두 떠안게 된다.
특이한 점은 업황이 좋지 않은 건설ㆍ해운 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의 정보기술(IT)과 정유, 식음료 등의 회사채도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SK에너지는 최근 3년, 5년, 7년, 10년 만기의 무보증채권을 5,000억원어치 발행했지만 기관의 수요예측 조사결과 3,600억원어치만 팔리는 데 그쳤다. 특히 7년과 10년만기의 회사채는 각각 1,000억원어치를 발행했으나 600억원씩 미매각 물량이 발생해 증권사가 이를 떠앉았다다. AA+등급의 GS칼텍스 역시 6년만기의 회사채 1,500억원 가운데 1,200억원이 팔리지 않았다. 또 A+등급의 LG이노텍도 1,500억원의 회사채 가운데 300억원이 미매각됐고, 한솔제지(300억원), KT렌탈(1,500억원) 등도 기관투자자이 외면했다. 오리온 역시 AA-등급이지만 5년 만기의 회사채 1,000억원 가운데 100억원이 팔리지 않았다. 최우량등급인 AAA판정을 받은 한국남동발전은 2,000억원의 회사채 가운데 600억원만 팔리는 데 그쳤다.
특히 업황이 좋지 않은 건설과 해운업종은 신용등급이 높아도 기관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삼성물산은 AA등급이지만 5년 만기의 회사채 2,000억원 가운데 1,700억원이 미매각됐고, 대림산업은 AA-등급을 받았지만 5년 만기 회사채 2,000억원에 대한 기관 수요가 제로였다. 또 현대산업개발(A+)도 2,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기관의 수요가 전혀 없었고, 두산중공업(A+) 역시 2,000억원의 회사채 중 1,150억원만 팔리는 데 그쳤다.
회사채 수요가 줄면서 유통금리도 크게 오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3.29%였던 'AA-' 등급의 3년만기 무보증회사채는 11월 30일에는 3.37%까지 상승했다. 황원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미매각으로 발생한 물량을 증권사들이 급매물로 유통시장에 내놓고 있다"며 "이 때문에 투자심리가 더 위축되고 회사채 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회사채가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것은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이후 투자심리가 위축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황원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말 웅진그룹의 회생절차 개시 이후 회사채 금리보다는 신용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며 "건설, 해운, 철강, 태양광산업에 속하는 업체의 회사채는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고 일부 대기업 계열사도 신용등급이 낮을 경우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기관들이 연말 '북클로징(결산)'에 나서는 점도 회사채 시장 위축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박성원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부본부장은 "회사채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전반적으로 커졌다"며 "또 연말 수익률 결산을 위해 기관들이 북클로징에 나서면서 수요가 연초보다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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