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규모가 점점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160%대 수준인데 다른 주요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하락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상승했다. 이러한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계부채가 환경변화에 잘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혈압이 있다고 해서 모두 뇌졸중이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우선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대출금리가 단기금리에 연동된 비중이 70%를 넘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금리계약도 단기금리가 변할 때마다 변하는 변동금리 계약이다. 정책금리 인하 시기에는 이자 부담을 빠른 속도로 줄여줘서 부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금리 인상기 때는 이자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금리가 계속 인하됐다가 인상국면이 진행될 때 위험한 구조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원금을 분할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대출비중이 70% 이상이다. 게다가 연령별로는 50대 대출비중이 35%에 달할 정도로 높다. 이자만 내는 구조는 만기 때 다시 대출을 못 받을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차입자의 신용도가 떨어지게 되면 재대출이 어렵게 되거나 대출 가능 금액이 줄거나 가산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현재 50대는 10년 후에 대부분 은퇴를 하게 되는 만큼 신용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인구구조 변화에 취약한 구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주택대출은 소구권이 있다. 차입자가 상환을 못하면 채권자는 집을 처분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차입자의 자산이나 소득에서 잔여분을 청구할 수 있다. 차입자는 담보뿐만 아니라 인보증을 서게 되는 셈이다. 인보증을 선다는 것은 우발채무를 지니게 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우발채무는 집값 하락으로 인해 집을 팔아도 빚을 모두 상환하지 못할 때 현실화된다. 집값 하락이 금융기관 부실보다는 소비자의 소비감소로 연결되는 구조다. 그나마 당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로 정도가 다소 완화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단순히 규모만을 봐서는 안 된다. 동일한 가계부채를 갖더라도 금융시장의 구조에 따라 환경변화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가계부채를 떠받치고 있는 토양이 취약하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황은 사람으로 치면 고혈압 질환이 있는 환자의 혈관도 튼튼하지 못한 꼴이다. 지금까지는 높은 혈압을 저금리라는 혈압약으로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이것마저 없어지게 된다. 정부 정책만으로 시장의 구조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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