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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교통 문화가 보험산업 키운다] <하> 자율안전체계 수립하자

교통사고 많은 지역 보험료 올리고 사고 신고 의무화해야

정치권 입김에 지역별 요율차등화 계속 무산

교통체계 개선 지자체에 교부금 등 인센티브

실버존 확대·고령 운전자 보호 대책도 시급


한국 사회에서 '지역주의'란 프레임은 의미 있는 논의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는 한다. 자동차보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0년 이후 정부는 세 차례 이상 자동차보험 지역별 요율차등화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교통사고가 많은 지역은 보험료를 많이 물리고 사고가 적은 지역은 할인해주자는 것이다. 손해율이 높아 보험료 인상이 유력했던 특정 지역의 정치인들이 지역 민심을 등에 업고 제도 도입을 반대해 번번이 무산됐다.

미국·영국·독일 등 교통안전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이 제도가 적극 활용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박사는 "인종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에서도 일부 주를 빼고는 대부분 지역별 요율차등화를 받아들였다"며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면 이를 상쇄할 만한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서둘러 논의를 중단한 것은 그만큼 문제해결 의지가 약하다는 증표"라고 꼬집었다.

한 대형 손보사의 고위임원은 "교통안전 문화 정착을 저해하는 일부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미진한 부분은 보험료 산정방식 등과 연계하면 사고도 줄이고 보험료 인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통사고 신고 단계에서부터 누수 발생=우리나라의 자동차 사고 신고율은 보험사고 건수 대비 21%(2008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고율이 낮은 것은 1990년 헌법재판소가 '사고운전자의 자기부죄 거절권(본인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자신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 보장을 인정하면서 신고 의무가 유명무실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폐해는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사고에 따른 피해 정도를 과장하는 경향이 생겼다. 경찰조서를 거친 사고는 사고내용에 따른 부상의 객관적 추정이 쉽고 허위 입원에 대한 조사도 상대적으로 쉬워 피해 과장이 원천적으로 힘들다.

신고 의무가 없다 보니 보험사기도 만연하기 쉽다.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고의로 차 사고를 유발한 자일수록 경찰 신고를 기피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기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경찰 신고의 진술거부권 침해에 대해 보다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급보험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건을 통제한 실증분석에서 경찰 신고와 지급보험금 간에 음(-)의 관계가 나타났다"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미신고건 일수록 지급보험금도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인적 피해 교통사고의 경우 운전자 당사자만 상해를 입었을 때는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경찰 신고가 없을 경우에는 발생된 의료비를 보험으로 처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자체·보험사 등과 연계한 유기적 대책 만들어야=지역별 요율차등화 제도를 도입할 때 저항을 줄이려면 지방자치단체 등과 손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기 박사는 "보험료가 인상되는 지역의 지자체가 교통신호 체계 등 교통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정부가 교부금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같이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라며 "사고 빈발의 원인이 지자체 예산 부족에 따른 교통안전 시스템 미비일 수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해주자는 취지"라고 조언했다. 법규 위반이 기준을 넘어설 때 보험료가 할증되는 '교통법규 위반 경력요율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무래도 범칙금을 상향 조정하면 영업용 택시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한 중형 손보사의 임원은 "현재는 속도위반을 2~3건 하면 보험료가 10% 정도 할증되는데 평균 차 보험료 수준을 봤을 때 할증률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 중앙선 침범 등 일부 중대 과실만 빼면 사고를 내도 구속되지 않아 운전자들의 태만 운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운전요건 강화, 실버존 확대 등 필요=고령 운전자 사망사고가 계속 늘어나면서 고령화에 맞춘 제도 보완도 절실하다. 경찰은 서울시 등에 사업용 차량 운전자격 유지 요건을 강화하도록 법률과 지침 개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 고령 운전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실버마크'도 제작해 고령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활동이 많은 지자체 등이 노인보호지역(실버존)을 많이 지정하도록 권장할 것을 조언한다. 실버존으로 지정되면 차량 제한속도를 낮추고 횡단보도의 녹색신호도 길게 줘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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