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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스타스/알파텔레콤] ADSL모뎀 국내호환 해결
입력2001-08-06 00:00:00
수정
2001.08.06 00:00:00
지난 99년 알파텔레콤 김희조 사장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통신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앞으로 시장성도 클 것으로 예상되면서 통신시장 진출여부와 사업방향에 대해 고심해야 했다.당시 김사장은 알파캐스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는 디지털가전을 내세우며 DVD플레이어와 셋톱박스 등 방송장비를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이 합해지는 시장변화를 주시하면서 통신사업에 진출하기로 한 것. 방송장비의 경우 중국의 저가제품에 밀려 해외 바이어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통신사업에 진출해 신규시장을 잡기로 했다.
알파캐스트에 통신장비 사업부를 신설하기 보다는 별도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김사장이 100% 출자해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한 회사가 알파텔레콤이다.
"당시 주위에서는 ADSL시장의 성장 여부가 불확실한 만큼 성급하게 사업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며 극구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장조사결과 시장성이 높다고 판단해 연구원 6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장의 설명이다.
초기 사업은 고난의 나날이었다. 매월 300만원의 임대료를 내면서 건물을 빌려 PC 몇대를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99년 코스닥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창투사와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자금사정이 양호한 편이었지만 알파텔레콤은 내세울만한 주력상품이 없어 직원들의 월급도 반으로 줄여야 하는 형편이었다.
다만 김사장과 연구원들은 당시 초고속망인 ISDN에서 ADSL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확신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ADSL 모뎀 개발에 열을 올렸다.
생활고는 가중되고 회사경영도 힘들어졌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았다.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ADSL 원칩 솔루션을 개발한 상태에서 한국통신이 초고속망을 기존 ISDN2에서 ADSL로 바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0년 1월의 일이었다. 가문에 단비가 뿌려졌다. 알파테레콤이 모뎀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제품개발은 마친 상태라 루슨트테크놀로지와 노텔네트웍스 등으로부터 장비인증을 받고 한국통신에 외국산 교환기와 자제개발한 모뎀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주문량도 증가하고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외국산 교환기(메인장비)와 한국통신 장비의 호환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급은 중단됐다.
김사장과 직원들은 6개월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호환성을 해결해야 했다. 월급도 줄어들고 밤을 새는 것은 기본이었다. 좁은 장비 캐비넷 사이에서 김사장은 눈물을 곱씹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8월 국내 처음으로 호환성 문제를 풀었다. 9월부터는 공급이 재개돼 매월 5만대 이상의 모뎀을 한국통신에 공급했다.
지금까지 40만대(450억원 가량)를 공급했는데 이는 한국통신이 사용하는 모뎀수의 20%에 해당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알파텔레콤은 모뎀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50억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상반기 3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올해 전체로는 600억원의 매출과 40억원의 순익이 예상된다.
코스닥시장 등록을 위해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결과는 8월말에 나온다. 창업 2년도 안돼 코스닥등록을 앞둔 벤처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서정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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