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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이슈] 달라지는 재계 3세

선대 그림자 벗고 전면에… 제품 개발서 M&A까지 진두지휘

지배구조 개편 맞춰 활발한 대외활동

이재용·정의선·김동관 등 인지도 높여

조급증 벗고 자신만의 색깔 보여줘야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김동관 한화큐셀 영업실장·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구광모 LG 상무·구본호 범LG가 3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조현준 효성 사장·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지난달 24일 청와대 기업인 오찬장.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식사 자리에는 재계 1·2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나란히 참석, 각각 박 대통령의 오른쪽 두번째와 왼쪽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지난 2013년 8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각각 박 대통령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았던 것과 비교하면 1년5개월여 만에 그룹의 중심이 3세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광이었다. 재계 3세들이 달라졌다. 선대 회장 밑에서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보좌를 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외부행사를 주재하거나 그룹을 대표해 주요인물(VIP)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재계를 뒤흔들었던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사실상 3세들의 작품이다. 효성과 LG가(家) 3세 간의 합작투자도 눈에 띈다. KT렌탈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을 3세가 주도하거나 '갤럭시S6'와 고성능차 등 그룹의 명운이 걸린 제품 개발에 3세 경영인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지난해부터 주요 그룹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물밑 작업이 이뤄지면서 재계 3세들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2일 서울경제신문이 2012년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양대 그룹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대외활동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움직임이 명확히 드러났다.

우선 정의선 부회장은 올 들어 외부 공식일정이 크게 늘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경제신문 조사 결과 정의선 부회장이 대표로 나선 행사(기업 내부 및 가족, 정 회장 동반참석 제외)는 2012년 2회, 2013년 4회에서 지난해에는 6회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벌써 5회다. 올 들어 세계가전박람회(CES)를 시작으로 디트로이트모터쇼,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의 울산공장 방문 영접을 직접 했다. 2012~2013년만 해도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을 수행해 이탈리아 기자단을 영접하거나 신형 제네시스 출시행사에 참석했지만 올 들어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는 일이 많아졌다. 기아차에서 'K시리즈'를 성공시킨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삼성은 이런 추세가 더 명확하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탓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이재용 부회장의 대외 활동은 △2012년 12회 △2013년 13회 △2014년 20회로 증가했다. 중국 왕양 부총리와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를 만난 것을 비롯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도 2012~2013년에는 이건희 회장을 수행해 베트남 공장을 찾거나 박 대통령의 방미 사절단에 동행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실질적으로 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열리고 있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된 '갤럭시S6'도 이재용 부회장이 개발 과정을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과의 1조9,000억원대 '빅딜'을 성공시킨 김동관 한화그룹 영업실장도 떠오르는 재계 3세다. 하버드대 동문인 이재용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김동관 실장은 빅딜을 성사사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동관 실장은 특히 그룹 내 차세대 성장동력인 태양광을 전담하면서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의 합병도 이끌었다.

최근 이뤄진 조현준 효성 사장과 범LG가 3세인 구본호씨의 합작도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람은 게임업체 액션스퀘어 지분 5.21%를 120억원에 매입했다. 공동 투자에 나선 조현준 사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이고 구본호씨는 LG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정회씨의 손자다. 업계에서는 효성과 LG가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크다.

유통 업계에서도 3세들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외손자이자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올해 그룹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3조3,500억원의 '통 큰 투자'를 결정했다. 이건희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역시 신사업 발굴을 진두지휘하면서 계열사를 직접 이끌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싱가포르 창이공항 뷰티 면세사업장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 면세사업을 크게 확장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서현 사장은 최근 들어 캐릭터 사업 진출과 차세대 패션 트렌드 창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신세계와 함께 유통 업계 '빅3'로 꼽히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회장도 오는 2017년 회장 취임 10주년을 앞두고 사세 확장에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의 맏아들인 정지선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패션과 가구·식품 계열사까지 거느린 종합 유통그룹으로 회사를 탈바꿈시켰다.



최근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사세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 유열씨는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이다.

조선·항공 업계도 3세들이 경영일선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인 기선씨가 지난해 10월 인사에서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하면서 경영 최일선에 나섰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최근 그룹 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아시아나애바카스의 대표이사직을 겸직하며 그룹 경영에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신세계와 호반건설 등이 뛰어든 금호산업 인수전에서도 사실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당분간 3세들의 움직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세지만 사실상 2세에 가까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면서 재계 입장 및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과감한 사업 재편과 M&A를 단행했고 최근에는 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으로 젊은층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인들도 왕성한 M&A 식욕을 보이는 등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두 아들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지난해 12월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와 함께 4조원 규모의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인수했다. 조현식 사장은 정의선 부회장과 경복초교 동기 동창으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식 사장은 현대차가 한국타이어의 한라비스테온공조 인수를 반대하자 "정의선 부회장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다. 재계에서는 한국타이어그룹의 활발한 M&A가 형제 간 계열분리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차녀인 민정씨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다. 국내 재벌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해군 장교로 임관해 근무 중이다. 3세들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LG가는 4세들이 착실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LG 상무는 2006년 LG전자 대리로 입사해 미국법인 등을 거쳐 지난해 말 임원이 됐다.

재계에서는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라고 보면서도 사회나 국민들과의 소통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창업주와 함께 일해 경영능력을 직간접적으로 입증했던 2세와 달리 3세들은 앞으로 경제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직접 입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업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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