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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짐 체인지] <3> 규제의 틀을 바꾸자

규제 만들때 경제 후유증 반드시 검증… 양보다 질 초점을<br>규개위, 정부 입법만 관여… 의원 입법때는 심사 안해… 국회 자율 심의기능 시급<br>각국 잇달아 빗장 푸는데 우리는 아직도 갈팡질팡… 정책 방향성부터 찾아야




#. 국내에서는 올 하반기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시내 면세점이 추가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부 부처 간의 이견 때문이었다. 그동안 문화관광부는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이해 시내 면세점 추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맞서 관세청은 외국인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공항이나 항만에서 면세품을 사면 되는데 왜 시내 면세점이 더 필요하냐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면세점 확대는 관세청의 고유 권한이라 면세점 추가 설립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 규제 완화 쪽에 결국 힘이 실렸다.

#. 영국은 지난 1990년대부터 '원 인 원 아웃'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개의 규제를 만들면 반드시 기존의 규제 하나를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한 구호다. 일종의 규제 총량제다.

전세계 각국들이 규제 완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경제ㆍ사회적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의 빗장을 풀기 위한 몸부림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규제는 신설될 수밖에 없지만 기존의 낡은 규제를 벗어버리려는 노력도 그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규제를 완화해야 시장의 매력이 높아지고 그래야 투자와 고용을 늘려 궁극적으로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각국 정부가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 규제의 신설과 폐지를 보면 과연 규제를 줄이려고 하는 것인지 규제를 오히려 늘리려 하는 것인지 방향성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국내의 규제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8년 5,186건이었던 규제가 2009년에는 6,740개로 늘어나고 2010년에는 7,055개에 달했다. 2011년에는 소폭 줄어든 6,952개를 기록했지만 올 7월 말 기준으로 다시 7,066개에 달해 7,000개를 넘어섰다. 전체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분명 국내 규제는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2008년에는 58개의 새로운 규제가 신설됐지만 31건의 규제가 사라졌다. 2009년에는 신규 규제(273개)보다 많은 415개의 규제가 폐지됐다. 2010년에도 신설(56개)보다 폐지(119)가 많았고 2011년에는 폐지(87개)보다 신설(94개)이 많았다. 그리고 연초 이후 7월 말까지 낡은 규제 34개가 없어지는 대신 127개의 규제가 만들어졌다.

더욱 문제인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규제와 의원 입법을 통해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 관련 법은 사회ㆍ경제적 파장에 대한 논의조차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의 입법활동은 법령안 입안→입법예고→규제 심사→법제처 심사→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상정→국회 심의→규제의 등록 시행→규제 개편ㆍ폐지 등의 과정을 지나며 새로운 규제에 대한 면밀한 영향분석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의원 입법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를 거치지 않아 신설 규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빠지게 된다. 결국 행정부도 정부 입법 대신 간편한 의원 입법이라는 편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세경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규제개혁국장은 "규제개혁위원회가 1998년에 세워졌고 신설 규제를 감독하면서 행정부 측면에서만 본다면 새로운 규제에 대한 심사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며 "하지만 이 같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가 의원 입법은 제외하고 정부 입법에만 관여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일부 부처에서도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정부 입법을 하게 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규제개혁위원회에 규제영향분석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며 "반면 의원 입법은 훨씬 간편한데다 상임위 위원에게 입법 실적을 제공하는 것이어서 선호하는 편"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는 정부의 규제와 달리 규제에 따른 후유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생략돼 위험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행정연구원의 김신 박사는 "국회 내부에서 규제 신설에 대해 스크린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이를 자체적으로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의 규제 완화 방침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입법부가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공무원들마저 규제 도입의 간편성 때문에 정부 입법 대신 의원 입법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 대한 새로운 규제조치는 풍선처럼 부푸는 현상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에서 의원 입법처럼 새로운 제도에 대한 편익분석이 생략된 일종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규제를 만드는 틀에서부터 규제의 사각지대까지 손질하자는 주장이다. 정부 입법에 대해서는 규제 심사를 하지만 이 같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의원 입법에 대해 풍선효과가 발생해 실질적인 규제 완화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의 고위관계자는 "의원 입법도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칠 경우 국회의원들의 입법권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회 내에서 자율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만 비로소 대한민국 규제의 틀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규제 완화가 단순히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인 차원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경제ㆍ사회적 규제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단순 숫자로만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황동운 대한상공회의소 팀장은 "규제마다 경제ㆍ사회적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어 규제 건수가 많다고 해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개별 규제 내용을 살펴봐야 우리나라 정부가 규제 완화로 방향성을 잡고 있는지 규제 강화로 돌아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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