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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뚝 감소했다고 하지만 고소득층의 지갑은 여전히 두껍다. 백화점 명품관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산하지만 소수의 고객들이 묵직하게 구매한다. 해외여행은 최근 '전세기' 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저가 상품보다 고가 상품이 더 잘나간다. 값싼 인터넷 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토익학원은 수강생이 줄었지만 어린이체육학원은 문전성시다.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찾은 서울 강남의 한 대형 백화점 명품관 직원들은 한목소리로 "체감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가 체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예년과 비교할 때 매출이 줄기는커녕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미군의 군용점퍼를 모티브로 모피가 달린 이탈리아 야상점퍼 브랜드인 '미스터앤드미세스퍼'는 500만~1,000만원으로 가격대가 상당히 높지만 대부분 모든 모델이 완판됐다. 특히 높은 가격대는 모두 팔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500만원 대 몇 개 모델만 남았을 정도다. 이 점퍼는 배우 전지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입고 나와 '전지현 야상'으로 불리며 최근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통한다.
A모피전문점의 한 매니저는 "우리 브랜드는 800만원에서 1,200만원 사이의 제품이 주력인데 40~60대 여성 고객들이 본인이 입을 목적으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 정도 가격의 모피제품은 경기보다는 날씨와의 상관관계가 높다"고 귀띔했다. 다른 모피전문점의 한 직원 역시 "올해는 결혼을 하면 좋다는 쌍춘년이라 그런지 1월 들어 300만~600만원대의 예물용을 구매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들의 소비도 극과 극이다. 드라마 '미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 정도로 계약직의 설움이 깊다고 하지만 젊은 층을 겨냥한 수백만원대의 명품 핸드백과 고가 패딩은 여전히 잘나간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S사의 매니저 B씨는 "우리 제품을 사는 고객들은 경기와는 상관없는 분들"이라면서 "330만원대의 제품들이 많이 팔리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찾는 고객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배우 최지우가 입어 유명세를 탄 P패팅과 '이종석 패딩'이라 불리는 C사 역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P사와 C사 매장 직원들은 "20~30대 고객들이 150만원 전후의 패딩을 주로 구매한다"면서 "올해 경기침체를 감안해 보수적으로 잡은 예상 매출액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고 지난해보다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구매층이 탄탄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점 역시 고가 브랜드가 꾸준한 매출을 올리는 힘이다. 빈티지 액세서리 전문점 사장 박모씨는 "지난해와 비교할 때 저가형 액세서리는 확실히 찾는 사람이 줄었지만 고가품의 경우 꾸준하게 팔린다"면서 "올해는 많은 사람이 찾기보다는 오는 사람은 많이 사가는데 이들은 대개 수집가들"이라고 전했다. 백화점에서 만난 바이올린 연주가 박모(30)씨는 "루이비통이나 구찌는 좀 흔하고 식상해서 발렌시아가나 고야드를 주로 구매한다"면서 "한번 쇼핑을 하면 보통 25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산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연간 2,000만원 이상 구매하는 '큰손' 고객들의 지난해 평균 구매액은 1년 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여행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해외 전문여행사 사장 김모(46)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기가 많았던 중국이나 동남아 등 저가 상품이 최근 주춤한 반면 유럽이나 미주·지중해 등 고가 상품은 꾸준히 늘어 전체 매출은 지난해보다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계속 여행을 다닌다는 것 아니겠냐"면서 "심지어 최근 지방에서는 전세기를 통째로 빌려서 가는 여행상품이 인기가 많다"고도 했다.
입시학원은 울상이지만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체육학원은 오리려 호황이다. 어린이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는 이모(31) 원장은 "자녀 건강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미취학 아동들의 등록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현재 원생 수가 500명을 넘어섰지만 증가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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