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중 하나인 철강산업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다. 30년 가까이 열연철판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한모(56) 사장은 요즘 월말이 다가오면 밤잠을 설친다. 경기침체로 납품대금 결제가 번번이 지연돼 직원들 월급날마다 급전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빼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현재가 더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최근에는 주요 거래처 중 한 곳인 조선업체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자동차 부문은 내수판매 부진으로 주문량이 제자리걸음이다. 공장 가동률도 2009년 대비 20~30%가량 줄었다. 한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만성화되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위기감이 더 심각하다"며 "새해에도 상황이 어려울 경우 사업체 정리까지 고려 중"이라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침체는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국내 산업의 풀뿌리인 중소기업이 스러져나가면 대량의 실직이 발생한다. 이는 곧 가계 빚 증가와 은행 부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나가게 된다. 특히 영세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경기하강을 알리는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 경기침체로 부채상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신용보증기금의 대위변제율이 최근 5년래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의 8월 말 현재 대위변제율이 3.6%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3.5%)보다 높은 수치다. 대위변제는 신보의 보증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에 부실이 발생, 이를 신보가 대신 갚아주는 것을 말한다. 대위변제율은 전체 보증 잔액 중 대위변제 금액의 비율로, 대위변제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의 상환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업종별로는 올해 성원건설이나 남광토건 등 중견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건설업종의 침체가 두드러졌다. 건설업종의 대위변제율은 6.2%로 2008년(5.8%)보다 증가했다. 신보 보증 부실률도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신보의 보증 부실률은 2008년 5.0%를 정점으로 2009년 4.4%까지 줄어들었지만 지난해와 올해 각각 4.7%와 4.8%로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올해에는 10억원 이상 고액보증 사고 비율이 높았던 것도 문제다. 보통 신보가 제공하는 일반보증 규모는 업체당 1억7,000만~1억8,000만원 수준. 하지만 올해는 11월 말 현재 10억원 이상 고액보증의 부실 건수가 총 309건에 달했다. 1990년대 중후반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최근 5년 사이 300건을 돌파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신보 측은 설명했다. 신보의 한 관계자는 "현재 보증 부실률은 당초 설정했던 부실률 관리 수치인 5.5%에는 못 미치지만 부실률 및 대위변제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업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제하며 "유럽 재정위기 및 내수침체가 일시에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내년에도 현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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