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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한국카프로락탐 김선옥사장] 관료 김선옥
입력1999-02-11 00:00:00
수정
1999.02.11 00:00:00
김선옥사장은 경제개발의 발동이 걸리던 70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관계에 첫발을 내딪었다. 이후 주벨기에대사관 경제협력관, 물가총괄과장, 국무총리실 경제심의관등을 거치며 92년 물가정책국장을 역임했다. 93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로 자리를 옮겨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지냈다.金사장은 지나온 공직생활중 90년 러시아 30억차관제공 유츌파동과 91년 물가파동을 막던 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이 일들은 관료 金선옥의 강직함과 추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90년 金사장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 제3협력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소련과의 수교협상을 벌이던 당시 노태우정부는 비밀리에 30억원의 차관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서울경제신문에 특종보도된 것이다.
이 일로 대노한 노태우 전대통령은 정보유출자 색출을 엄명했고, 제3협력관인 金사장이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3개월에 걸쳐 안전기획부 지하실등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심문을 당한 金사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결백을 주장했다. 웬만한 사람같으면 굴복을 했겠으나 金사장은 옳은 일은 죽어도 옳다고 해야 하는 강직한 관료였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金사장의 결백이 입증됐다. 기자가 모스크바 현지의 종합상사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91년 수도권 물난리때의 배추수송작전은 金사장의 뚝심, 추진력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수해로 배추값이 폭등하자 당시 예산실 심의관이던 金사장은 강원도 고랭지채소를 긴급 수송해올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에 현장에 출동한 金사장은 현장에서 인부들은 진두지휘하고 수십대의 수송트럭을 동원했다. 밤을 꼬박 새워 영동고속도로를 메우다시피 트럭을 몰고 서울로 배추를 나른 결과 급한 붑을 끄는 성과를 거뒀다.
金사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재직시절에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반도체경기가 무너지던 95년에 재벌그룹의 계열사 출자제한을 명시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낸 것. 金사장의 경제에 대한 혜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을때 불행히 부하직원들의 비위사건이 터졌다. 金사장은 이때 도의적 책임을 지고 과감히 용퇴했다. 자기가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니지만 상관으로서 책임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金사장은 30년 가가운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金사장은 공직에 대한 미련이 없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옛날 사법고시에서 행정고시로 전환할 때도 하늘의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경영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하늘의 뜻입니다』
金사장은 경제관료로 쌓았던 경험을 경영에 접목, 한국카프로락탐을 2000년대 초일류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金사장은 젊은 시절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일조했던 것처럼 경영의 신화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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