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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증시 변방서 중심으로 우뚝… 한국경제 젖줄役 '톡톡'

[창간 기획] 한국증시 54년, 어제와 오늘<br>56년 12개 상장사로 첫 출범… 70년대부터 본격 성장<br>외국인 보유주식, 18년만에 4兆원서 300兆원으로 확대<br>시총 세계 11위·선진 증시 합류… 2,000P 재탈환 눈앞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3월3일. 서울 명동에서는 한국 경제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는 행사가 열렸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증권시장이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이다.

그로부터 54년이 흐른 지금 '코리아 마켓'은 자본시장의 첨병으로서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세계 증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섰다. 외국인들이 앞다퉈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나서면서 하루에도 수조원의 돈이 증시에서 움직이며 경제의 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증시 시스템도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며 선진 금융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더욱 강고히 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 증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해본다.

◇12개 상장사로 첫 개장=국내 증시는 지난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서는 증권시장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거래소 문을 연 것이다. 당시 상장사는 상장번호 1번인 조흥은행(신한금융지주에 합병)을 비롯해 대한증권거래소 출자증권, 한국연합증권금융, 저축은행, 경성방직 등 모두 12개 종목이었다.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가 1896년에 12개 종목으로 시작한 것을 본뜬 것이다.

이후 1961년 들어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증권시장은 자금조달 창구로 육성되기 시작하며 투자 분위기 조성과 주식공급 확대에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62년에는 주식거래대금이 무려 223배나 증가한 983억원까지 치솟는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8년에 한국투자공사(현 하나대투증권)가 출범하고 이듬해에는 '자본시장 육성의 해'가 지정되는 등 증권시장 육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1971년에는 연간 주가 상승률이 39%에 달했다.

특히 이듬해에는 정부가 기업들의 상장을 독려하기 위해 '기업공개촉진법'을 시행하면서 증시가 무려 127% 치솟는 등 급등세를 탔다. 1975년 6월에는 현재 시가총액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상장해 비로소 증시에 얼굴을 내비쳤다.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중동발(發) 해외건설 붐을 탄 경제호황에 건설주를 중심으로 급등하는 등 증시가 활황을 맞았다.

하지만 이후 1978년 중동 붐이 시들해지자 건설주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지는 등 상당한 부침을 겪어야 했다.

1970년대는 경제성장과 함께 증시의 몸집이 본격적으로 커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 초와 후반의 증시 상황을 보면 상장회사 수는 48개사에서 356개사로 늘고 연간 주식거래대금도 429억원에서 1조7,415억원까지 급격히 팽창됐다.

1980년대는 1985년을 기점으로 국제유가∙국제금리∙달러화 등 이른바 '3저(低)' 효과에 힘입어 증시가 다시 상승하는 계기를 맞았다. 당시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이 12%를 넘는 고도성장과 사상 초유의 경상수지 흑자전환에 힘입어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대활황이 펼쳐지며 주가는 연평균 80% 이상 급등했다.

1980년 1월4일 100포인트로 소급 적용(실제 지수 출범은 1983년)해 첫 출발을 한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989년 3월31일에 사상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9년 만에 주가가 무려 10배 뛴 셈이다.



◇외국인 주식보유 18년 만에 4조원에서 300조원으로 확대=1990년대에 들어 우리 증시는 외국인의 국내 투자 허용과 국내 기업의 해외상장, 그리고 선물 및 코스닥시장 개장 등 국제화와 다양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외국인에 대한 투자허용은 1980년대 준비기를 거쳐 1991년까지 간접 개방기를 맞았다.

1992년부터 외국인의 직접투자와 내국인의 해외증권 투자가 허용되면서 국제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주식의 경우 외국인들은 일반법인 지분의 10%(공공법인 8%)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후 1997년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면서 외화유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1998년 외국인의 국내 투자 완전 자유화로 이어지게 됐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개방은 달러화 유입 외에도 이후 원화의 급격한 등락과 국부유출 논란 등의 소규모 개방 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1992년 증시 첫 개방 당시 외국인 투자가는 1,572명, 주식순매수 금액은 1조5,083억원, 주식보유액은 4조1,451억원(시가총액 대비 4.9%)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8년 증시가 완전히 개방되면서 주식보유액 규모는 25조6,334억원으로 늘었고 시총 점유율도 18.6%까지 확대됐다. 2010년 현재 외국인 보유금액은 301조원, 시장점유율은 31% 그리고 외국인 투자가는 2만9,856명으로 국내 증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

1994년에는 포항제철(현 POSCO)과 한국전력이 미국 증권시장에서 공모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등 국내 기업의 해외사장이 첫발을 디뎠다. 이듬해에는 한국주가지수200(코스피200)을 기반으로 선물시장이 개설되고 1996년에는 중소ㆍ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코스닥시장이 문을 여는 등 증시 개방화와 시장의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이 같은 급격한 개방은 1997년 11월21일 IMF 외환위기로 이어지면서 한보그룹과 삼미∙대농∙기아∙한라 등 재벌그룹이 줄줄이 무너져 증시를 또 한번 수렁에 빠뜨렸다. 또한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보기술(IT) 붐이 일면서 관련주들이 급등했다가 2000년 초반에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세계 11위 증시로 우뚝…선진증시 대열에 편입=1990년대 증시개방 이후 외환위기와 IT버블을 거친 우리 증시는 2000년 들어 저금리 시대를 맞았다. 특히 저금리는 펀드 등 간접투자에 대한 열기를 북돋우며 국내 증시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기 시작했다. 주식형 펀드는 1970년에 첫선을 보였으나 실제 대중화되기까지 3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주식형 펀드는 1998년 10월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으며 유입되기 시작해 1999년 3월 '바이코리아 펀드(현대증권)'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 펀드의 경우 4개월 만에 12조원의 돈이 몰렸다. 1998년 말 8조원에 불과하던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1년 뒤 56조원까지 폭증했다.

간접투자는 국내 증시에서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가들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적립식투자∙가치투자∙장기투자 등 한층 선진화된 투자문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펀드 붐은 이후 2006년 이후부터 2007년 말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2,000포인트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다시 고조됐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또 한번의 아픔을 맛보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증시는 이전에 비해 훨씬 선진화된 투자문화와 시스템을 갖추며 선진시장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지수로 편입됐고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11번째 주요 증시로 우뚝 섰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빠른 경제회복과 ITㆍ자동차를 앞세운 높은 기업실적을 기반으로 외국인들의 거센'바이코리아'가 재연되면서 코스피지수는 2,000포인트 재등정을 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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