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여전사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 순방에 동행했다. 현대캐피탈이 유독 해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 수장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현대캐피탈은 올해 상반기에만 해외 대출자산이 25조6,000억원을 돌파하면서 국내(20조원)보다 규모가 커졌다. 현대캐피탈은 이제 국내 금융사들이 어떻게 해외로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되면서 캐피털사의 해외 진출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장 금융당국이 대출업무 영위기준 개편을 골자로 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신용대출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의 사업개편이 불가피해진 점도 재조명된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남아시아 마이크로파이낸스(저소득층 소액대출)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빠지는 수익성, 옥죄는 규제=국내 캐피털사를 둘러싼 환경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올 1·4분기 캐피털 업계의 운용수익률은 9.1%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 대비 0.2%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최근 10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시름을 깊게 한다. 하반기 중 수수료 체계 합리화 등 리스관행 개선조치가 시행되면 이익률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도 1.1%로 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당국이 개인 신용대출을 총자산의 20%까지 제한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캐피털사의 신용대출 시장 확대는 제약을 받게 됐다.
당장 롯데캐피탈 같은 회사는 5,000억원의 자산감축을 견뎌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주캐피탈·한국스탠다드차타드캐피탈·두산캐피탈 등 굵직한 캐피털사들이 매물로 나오는 실정이다. 한 캐피털사 관계자는 "업계 선도사들이 상당수 매물로 나와 있는 환경만 봐도 비카드사 여전업계가 처한 현실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동남아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공략하라=전문가들은 캐피털사가 동남아 마이크로파이낸스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 사례가 시중은행이다. 시중은행들은 동남아 진출전략으로 현지 마이크로파이낸스 회사 인수·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캄보디아 서민금융회사 말리스의 법적 인수절차를 마쳤고 하나은행은 미얀마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 설립승인을 얻은 데다 인도네시아 현지 서민금융 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서민금융 대출에 민감해야 할 캐피털사들의 해외 진출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해외에 진출한 캐피털사는 고작 3개 더 늘어났다. 그나마 은행계 캐피털사를 제외하면 늘어난 곳이 없다. 같은 기간 은행은 10곳 증가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중은행보다 캐피털사들이 규모나 취지로 봤을 때 동남아 마이크로파이낸스에 진출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 캐피털사 임원은 "친분이 있는 한국인 외국계 캐피털사 수장이 베트남 시장에 서둘러 들어오라고 말한다"면서 "고금리에 성장동력이 있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해야만 캐피털사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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