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시내를 벗어나 M1고속도로를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쭉 뻗은 전나무 숲 사이로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러시아에 세워진 한국의 첫 생산기지인 LG전자 루자 공장이다. 세차게 퍼붓는 눈길을 운전하던 현지인 세르게이는 멀리 보이는 루자 공장을 가리키며 ‘기적’이라고 말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뚫고 1년4개월 만에 공장을 지어 LCDㆍPDP TV 등 첨단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직접 눈으로 본 루자 공장 역시 모스크바의 겨울을 비켜간 듯했다. 찬 공기를 막는 ‘에어 커튼’ 안쪽의 생산라인에서는 LCDㆍPDP TV, 세탁기, 냉장고를 숨가쁘게 토해내느라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안성덕 LG전자 CIS지역 대표(상무)는 “올초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크레인 유압까지 얼어 보름 정도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며 “지금 추위는 그때를 생각하면 별것 아니다”고 말했다. 유라시아 시장 선점을 기치로 내건 루자 공장은 모스크바에서 72㎞ 떨어진 15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각각 2개씩의 제품생산동과 부품생산동을 갖추고 있다. 연간 생산량만 따져도 PDPㆍLCD TV 50만대, 세탁기 70만대, 냉장고 20만대, 오디오 26만대에 달한다. 하루에만 1,600여대의 PDPㆍLCD TV와 1,900여대의 세탁기가 이 공장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셈이다. 루자 공장은 글로벌 상생경영에도 발벗고 나섰다. 2개 생산라인을 갖춘 7개 부품업체들은 사출ㆍ판금ㆍPCB 등을 생산해 러시아 현지에서 조달할 수 없는 부품들을 공급하며 든든한 동반자로 뛰고 있다. 안 상무는 “투자를 결정할 때만 해도 경쟁사조차 우려할 정도의 과감한 투자였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 시장을 누구보다 빨리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지 기지를 갖추지 못한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러시아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우회 통관을 규제하는 바람에 두꺼운 관세장벽을 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지인들이 루자 공장을 과감한 선도투자와 최고경영진의 투자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성공사례로 꼽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석준 LG전자 CIS지역본부 부장은 “초기 생산라인이기 때문에 품질 관리 등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며 “오는 2010년까지 전품목 10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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