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는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세계 금융불안에 따른 달러화 부족 현상이 해외차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외화유동성에 압박을 가하면서 자금경색을 심화시켜 위기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부도 위험도가 태국ㆍ말레이시아보다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현지시간) 세계 금융위기로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은행 대출능력이 타격을 입는 등 한국이 신용경색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은행들이 성장촉진을 위해 과도하게 해외차입에 의존해온 탓에 최근의 세계적인 달러 부족 현상에 한국경제가 유독 취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특히 최근의 원화 가치 급락세를 한국의 최대 문제로 지적하고 “한국은 미국 주택시장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엄청난 타격을 경험하는 첫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통화당국은 외환보유액을 깎아먹으면서까지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2일에도 달러당 환율은 36원50전 폭등한 1,223원50전으로 마감, 5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급등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환율 급등은 외화유동성을 급속도로 악화시키며 자금경색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5일 내놓은 ‘최근의 외화유동성 상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재 외화시장에서는 기간물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오버나이트(하루짜리 초단기 외화차입)로 외화를 조달해야 하고 외화 기업어음(CP) 발행도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지속과 8월 한 달 동안 47억달러 적자를 낸 경상수지 악화까지 더해 외화유동성 사정은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이 연구위원은 경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금경색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넉넉해 미국이나 유럽의 도산 금융기관과 자산을 헐값에 사들이고 있는 일본과는 다른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유동성 부담 때문에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국제금융시장의 시선도 급속도로 냉담해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일 현재 우리나라 국채 5년물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84%포인트로 말레이시아나 태국(각 1.70%)보다도 높다. 지난해 말에 비하면 무려 1.39%포인트나 급등했다. CDS란 신용위험을 피하려는 채권 매입자가 매도자에게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부도 등이 발생했을 때 사전에 정한 손실을 보상 받기로 하는 계약으로, 결국 프리미엄은 채권 발행자의 부도 위험도를 나타낸다. CDS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용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시장에서 인식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은 말레이시아나 태국보다 부도 위험이 높다는 얘기다.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장 상황 때문에 정부가 최근 한ㆍ중ㆍ일 재무장관 회담을 전격 제안한 것도 한국경제의 또 다른 ‘외화 유동성 위기신호’가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역내 공조체제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애매한 설명만을 내놓고 있지만 심각한 국내 달러화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1, 2위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한 양국에 ‘SOS’를 급타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9월 말 현재 2,396억7,0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서만 35억달러, 올 들어서는 225억5,000만달러나 줄어들었다. 정부는 이 같은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당정협의에서 강조했듯이 앞으로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달러화 투입은 지속될 전망이어서 외환보유 감소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국내 외화유동성 압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정부는 주요 선진국과의 공조체제 강화, 경상수지 적자요인 억제, 공공 부문을 통한 외화차입 등으로 외화유동성 확보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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