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미혼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부분 영화들은 둘 사이에 또 다른 사랑이 끼어서 삼각관계가 되거나, 혹은 둘 중의 한명이 불치의 병에 걸리는 극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실제 우리 삶에서 사랑을 가로 막는 것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남루한 가정형편, 비루한 가족들, 팍팍한 일상들. 대부분 두 사람의 관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것들은 종종 사랑을 가로막는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영화적 환상 대신에 이런 사랑의 실제적 어려움을 선택한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현실적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빈곤이 일상화된 이 시대에 사랑이란 것을 하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네약국의 약사 인구(한석규)와 동대문에서 가짜 명품을 만들어 파는 디자이너 혜란(김지수). 한 동네에서 살며 스쳐 지나가다가 우여곡절끝에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들 앞을 가로 막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혜란에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5억의 빚이 있다. 매달 빚 독촉에 시달리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겐 사랑 따윈 사치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 자신을 낭만과 감상에 빠지게 하는 인구의 존재가 버겁다. 인구에겐 정신지체를 앓는 형 인섭(이한위)이 문제다. 평생 형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에게도 사랑이란 부담스러운 일. 혜란에 대한 애정이 깊어 갈수록 형이 짐처럼 느껴지자 그는 차라리 사랑을 멀리하려 한다. 영화는 이렇게 팍팍한 두 사람의 삶을 통해 낭만이 거세된 사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보여준다. 그 모습들은 관객에게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준다. 영화 속 로맨스는 예쁘지만 출구 없는 두 사람의 삶이 그 사랑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에 희망이라는 마지막 출구를 만들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가 결말로 달려가도 두 사람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지만, 적어도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아무리 힘든 삶 속에서도 더 깊어지는 사랑의 모습, 이걸 보는 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이다. 두 배우는 노련함으로 이 두 사람의 고된 사랑이 주는 맛을 제대로 살려 내는 연기를 했다. 한석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 좋은 청년의 모습으로 극에 현실감을 살려준다. 김지수는 삶에 지친 까칠한 여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는데 그간 보여준 여성적 연기와는 또 다른 감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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