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유수의 A대학교. 이 대학에서 일하는 인력은 1,000여명이 채 안된다. 그나마 계약 형태로 돼 있는 비정규직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립 대학에서는 제법 많은 축에 속한다. 학교 관계자는 “대부분 학교 운영을 재단에서 들어오는 돈과 학생들의 수업료로 충당하다 보니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고 일자리 창출도 매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강우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보통 대학교 한 곳당 1만명 수준이고 많은 곳은 1만5,000명에 이르는 곳도 있다”며 “대부분이 정규직”이라고 소개했다. 학생수보다 교직원 인력이 통상 5배를 웃돈다. 대학 자체적으로 비즈니스 능력을 키우고 이 곳에서 다양한 일자리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학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종의 한 축으로 생성되고 있는 셈이다. 서비스업은 이제 우리 경제의 고용 구조에서 제조업을 능가할 정도로 핵심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서비스업이 창출해내는 고용 규모도 제조업의 두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서비스업의 취업계수, 즉 1억원어치의 국내총생산(GDP)을 생산할 때 창출하는 일자리 지수는 지난 90년 5.24명으로 제조업 5.91명에 비해 뒤쳐졌지만 95년에는 4.63명으로 제조업 3.75명을 앞질렀다. 이어 2000년에는 4.41명으로 제조업(2.28명)의 1.93배에 이르렀고 올해에는 3.82명으로 제조업(3.82명)보다 2.22배나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비스업의 취업자 비중도 2000년 69.0%에서 지난해 11월에는 72.7%까지 올라갔다. 고용 구조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이처럼 급속하게 커지고 있지만, 사실 여전히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가 적지않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외형상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이 미약하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서비스업중 생계형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소매 및 음식 숙박업’의 취업자는 지난해 11월 현재 586만명으로 서비스업 취업자의 35.7%, 전산업 취업자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서비스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20% 포인트 정도 떨어진다고 밝혔다. 서비스업에서 찾을 수 있는 고용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관광ㆍ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 업종과 물류를 통한 기업 지원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업종에서 찾을 수 있는 고용 효과를 의미한다. 강우란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고 외국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일자리가 종래의 산업구조를 통해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며 “산업 구조를 시급히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고용과 서비스 육성의 접합점, 즉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무엇일까. 적어도 올 한해 음식ㆍ숙박업 등 자영업에서 추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이들 업종에 대해 업종 전환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무현대통령이 최근 ‘경제민생 점검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건강ㆍ의료ㆍ보육ㆍ교육ㆍ문화ㆍ관광레저 등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해 소비부진, 나아가 고용부진이 야기될 수 있다”면서 이 분야의 집중 육성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 같은 발언들은 이미 수없이 되풀이 된 ‘교과서식 멘트’일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개방에 대비해 ‘질적으로 우수한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 정도로 우리의 서비스업 수준은 열악하다. 오죽하면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부가 지난해에 들어서야 서비스와 관련된 제도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정부 당국의 미숙함을 인정했을까. 이 부총리는 “우리 머릿 속에는 언제나 모든 제도 등이 제조업 위주로 돼 있고 서비스업은 항상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서비스업에 대한 육성책은 커녕, 다양한 규제에 얽혀 옴쭉달싹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현실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근 강연에서 “한국경제의 내수와 투자 부진을 해소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과 의료, 관광, 레너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며 “더 이상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제조업 대신 교육시설과 골프장 등 서비스 산업의 기업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100여가지에 달하는 토지 규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는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대한 육성의 필요성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개방의 움직임과도 연계돼 있다. 정부는 동북아허브 구현을 위해 경제자유구역내에 외국인 병원과 학교 설립을 허용하기로 한 상황. 의료기관 등이 반발하?있듯, 이들 전문분야에서 우리의 수준은 선진국에 최대 10년 이상 뒤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이 내린 처방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물류와 유통 등 제조업을 지원하는 서비스 산업에 대해 세제 지원과 전력 사용 비용 등에서 제조업에 비해 불리한 차별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비용이 대표적 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 분석’에 따르면 물류업의 제조원가 대비 전력 비중은 3.2%로 제조업의 1.7%에 비해 2배나 높다. 물류 산업의 육성만 외쳤지, 이를 위해 산업용 전기 요금이 아닌 일반용 전력 요금을 적용해야 하는 지원책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을 통한 고용 증대는 사회 저변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서 찾아야 한다”며 “그 시발점은 곳곳을 휘감고 있는 규제들의 완화와 작지만 세심한 정부 당국의 배려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공동기획:현대경제연구원 후원:재경부, 노동부, 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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