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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상사 철강본부과장(비상경영의 현장)
입력1997-11-05 00:00:00
수정
1997.11.05 00:00:00
고진갑 기자
◎수출목표달성 몸부림… 결과는 헛장사/환율급등속 가격인하요구 채산 악화/제조업체 제품값 낮추기 거의 불가능/6시출근 밤10시퇴근 “입사이래 최악”지난 31일 A상사 철강수출본부.
출근시간보다 1시간 30분 이른 6시30분이지만 빈자리가 거의 없다. K과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접속을 시도한다. K과장이 필수적으로 찾아가는 사이트는 동남아지역 현지신문들이 개설한 홈페이지. 요즘처럼 국제시황이 시간마다 변하는 상황에서 현지정보를 모르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다른 직원들도 우선 현지정보 파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본부장인 L이사의 주재로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지난달 계약한 인도네시아 수출건은 이상없겠지요. 이 건마저 잘못되면 우리 일납니다.』본부장이 K과장에게 시달한 내용이다.
요즘 L이사의 얼굴은 항상 어둡다. 매사 자신감으로 넘치고, 적극적이었지만 최근들어 여러차례 수출계약이 불발되면서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자신들로 인해 올 수출목표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올들어 10월까지 이 팀의 수출실적은 2억6천만달러. 목표치의 82%를 달성했다. 예년 같으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성적이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불안하다. 하반기들어 주력시장인 동남아지역 물량이 줄어들고 있고, 기존 계약건도 바이어들의 여러가지 요구와 트집으로 최종선적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L본부장의 웃음 잃은 얼굴과 K과장의 고민은 최근 종합상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요즘 이 팀의 가장 큰 고민은 바이어관리.
『이미 체결된 계약을 몇차례고 확인에 또 확인을 해도 안심이 안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는게 요즘 상황이다. 아무리 작은 오더라도 수십번이나 들여다 본 탓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지만 어느 것 하나 소흘히 할 수 없다』는게 K과장의 설명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지 바이어와의 접촉이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다. 혹 떼려다 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K과장은 결국 전화를 들었다. 바이어의 첫 소리는 가격인하 요청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해보지만 막무가내. 결국 가격을 낮춘 뒤에야 최종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가격인하는 손익감소로 이어진다. 『원화가 급등하지만 채산성은 도리어 나빠지고 있다』는게 종합상사들의 고민이다. 이 팀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심해지고, 환율급등으로 가격인하 요청이 강한데다 외국환율도 동반상승, 실익은 크지 않다. 이런 경우 유일한 해결책은 가격인하 분 만큼 제조업체로 부터 조달하는 제품값을 낮추는 것.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샌드위치 신세다.
보통 때 같으면 퇴근할 시간이 밤 8시지만 요즘에는 거의 퇴근을 하지 못한다. 특히 연말 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총력전이 전개되면서 정시퇴근은 꿈이다. K과장은 입사이후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경우는 별로 없었다.
S대리로 부터 오늘 들어온 주문건과 싱가포르 구매모델 변경건 등을 보고받은 뒤 오늘 결과를 팀장에게 보고한다.
『헛장사내요.』 힘이 쭉 빠진다. 그렇다고 이것을 팀장의 질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할 뚜렷한 방안이 많지 않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올해 목표는 달성해야 합니다.』 본부장의 말을 되뇌이며 회사를 나선 시간은 밤 10시20분. 극심한 경기침체와 환율급등으로 목표달성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상사맨의 하루는 힘겹기만 하다.<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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