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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씨 타계] 왜 대북사업 집착했나
입력2001-03-22 00:00:00
수정
2001.03.22 00:00:00
"경협통해 고향방문" 필생염원'고향'과 '아버지'
정주영이 대북사업에 강한 집착을 보인 가장 큰 요인이다. 농촌이 싫어 18살 때 아버지 몰래 소판돈 70원을 훔쳐 가출했던 그는 한국 최고의 기업을 일구면서 다시는 못볼 것으로 여겨졌던 아버지와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가 "대북사업은 필생의 사업이었다"고 강조한 것은 경협사업에 사업을 통해 살아 생전에 고향을 방문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가 금강산 개발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바로 '고향'때문이었다.
금강산 인근 강원도 통천 출신의 정주영에게 금강산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언젠가는 돌아가야할 고향의 의미가 강했다. 그만큼 금강산 관광사업은 그에게 필생의 염원이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대북사업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가 남들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소떼몰이 방북을 생각해 냈던 것도 바로 고향에서 소 키우기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를 생각해서다.
관계자들은 "정주영이 찢어지는 가난속에서 고향을 지킨 아버지에 대한 성공한 노동자 아들의 선물로서 일찌감치 서산농장을 일구며 소를 준비해 온 것 같다"고 평가한다.
아버지의 만류를 무릅쓰고 고향을 떠난 뒤 세계적인 부자가 된 그가 '소'라는 극적인 이벤트를 마련한 것은 손이 부르트도록 고생을 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다른 재벌기업가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가 대북사업이라는 점도 그의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건설, 중공업 등 굵직굵직한 제조업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키워낸 그로서는 현대를 통해 대북사업을 마무리하고 싶어했다. 그가 사업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고향땅에 털어놓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특히 막대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고 국내외 업체들을 서해안 공단에 입주시키려면 건설, 전자, 중공업, 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현대가 주도할 수 밖에 없고 이를 통해 차별성을 인정받고 싶어한 것도 그의 행보를 서두르게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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