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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직원들이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어 멍하니 서있는 경우가 많아요." 남동공단의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B사의 P대표는 "마주치면 직원들이 민망해 할까 봐 작업장에 내려가보지도 않는다"며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설비 1대당 1명의 직원이 붙어 제품을 생산해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1명이 2~3대의 설비를 담당하는 체제로 바꿨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인력을 줄였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장이 쉬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게 P대표의 생각이다. 이 공장 근처에는 벌써 오래 전부터 문을 닫아 인기척이 없는 공장이 수두룩하다. 이 일대 공장들은 지난 2~3년간 생산품의 가격이 두배가량 뛰는 호황을 보였지만 지난 가을 이후부터 폐업을 하거나 긴급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을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쌓인 매물이 산더미다. 남동공단 주변 T공인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처분을 부탁받은 공장 매물은 200여개에 달하지만 매수 희망자는 10명도 안 된다"며 "그나마도 매도ㆍ매수 호가 차이가 커서 지난해 11월 이후 거래된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떨어진 공장 가동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업단지공단이 집계한 남동공단과 반월ㆍ시화공단의 지난해 12월 공장 가동률은 각각 69.1%와 69.7%를 기록했다. 특히 남동공단의 경우 전년 동기의 81%에 비해 11.9%포인트가 감소했는데 이는 집계 이후 최저 기록인 지난 1998년 3월의 66.6%에 근접한 수준이다. 조업중단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길거리에 내몰린 실직자들은 일거리를 찾아 공단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남동공단의 홍보용품 제작업체인 예원에이앤지의 김경자 대표는 최근 새로운 생산 설비를 들여오면서 2~3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해 지역 정보지에 구인광고를 냈다가 밀려오는 구직문의에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을 겪었다. 김 대표는 "하루에 전화문의가 30~50통에 달했고 이력서를 들고 직접 공장을 찾아온 구직자들도 하루 평균 20명이나 됐다"며 "직원이 10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영세해 평소 같으면 인력채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텐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공단 내 기업체 사장들의 친목모임도 사라졌다. 시화공단의 한 업체 대표는 "동종업체 사장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치는 친목모임에 지난 연말부터 하나둘씩 참석자가 줄어들었다"며 "뒤에 얘기를 들어보면 부도가 나 사장이 도피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이들에 의지해오던 지역경제도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식당마다 줄을 서있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아예 영업을 하지 않아 불이 꺼진 음식점도 식당가 곳곳에 보였다. 반월공단의 K식당은 점심시간에도 10개의 테이블 중 절반이상이 비어 있었다. 6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예전 같으면 점심시간에 10개의 테이블이 최소한 2번 정도는 회전을 했지만 지금은 테이블을 다 채우기도 힘들다"며 "하루 평균 7만~8만원에 달하던 배달주문도 뚝 끊겨 지금은 월세를 내기도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시화공단에 위치한 제과제빵 전문업체 삼립식품의 특가매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삼립식품의 특가매장은 재고상품을 시가의 20~50% 정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를 해 저렴하게 점심 한끼를 때우려는 공단 직원들이 애용하던 곳이다. 특판매장의 직원 E모씨는 "감원이나 휴업 등으로 공단 내 상주인구나 유동인구가 크게 줄면서 매출이 50% 이상 감소했다"며 "평소 점심시간에만 50~70개 팀 정도 되던 손님이 지금은 20개 팀 이하로 격감했다"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는 업체들도 있다. 반월공단의 LED 관련 장비 제조업체인 H사는 지난해부터 관련 대기업들이 잇따라 감산에 돌입하면서 매출과 공장가동률 모두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이 회사 K대표는 연초 신년식에서 올 한해 모토를 '렛츠 고 투게더(Let's go together)'로 삼고 58명의 직원 중 단 한명도 감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K대표는 그동안 내수 위주의 생산에서 탈피해 일본이나 대만 등 해외로 시장을 다변화하기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다. K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위기로 해외 수출을 추진하면서 해외 수준에 맞는 기술개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며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로 임직원이 똘똘 뭉친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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