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50년간 노력해서 갖춘 기술이면 우리나라는 적어도 50년은 갈고 닦아야 그 기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특정 기술을 확보하는 데 30년의 시간이 소요됐다면 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최소한 그 기술을 갖는 데 30년은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미래 로봇 시장이 10년 후에 급팽창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무런 기술 개발ㆍ축적 없이 10년 후 갑자기 그 시장에 확 뛰어들어 성과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준호(사진)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 겸 KAIST 대외부총장은 21일 개막한 '서울포럼2014, 기술이 미래다-창조ㆍ융합ㆍ도전'을 앞두고 최근 대전 KAIST 대외부총장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꾸준한 로봇 기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2004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개발해 휴보 아빠로 잘 알려진 오 교수는 인터뷰에 임하기 전 기자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로봇 산업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말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와 중국의 추격 등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의 로봇 산업이 당면해 있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했다.
실제 한국은 산업용 로봇과 비산업용 로봇 분야 가운데 특히 산업용 로봇 분야가 취약하다. 감속기·구동기 등 산업용 로봇의 핵심 부품은 거의 100% 일본과 유럽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몇몇 주요 부품의 국산화는 성공인 동시에 실패로 볼 수 있습니다. 제품을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는 성공인데 수요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실패인 것이죠. 예를 들어 100억원을 들여 달에 가는 로켓을 쏜다고 가정해봅시다. 로켓에 들어갈 모터의 가격이 한국 기업 제품이 10만원이고 기술력을 검증 받은 글로벌 업체의 것이 100만원이라면 어떤 제품을 쓰겠습니까."
쉽지 않은 환경임에도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묻자 그는 "그게 참 어려운 문제인데…"라며 고심한 뒤 결국 꾸준한 기술개발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오 교수는 "자동차·조선 등 우리가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의 기술개발 못지않게 로봇·소재 등 우리가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부문의 기술개발도 중요하다"며 "로봇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천기술과 기계 소재 부문에서 현재 일본 등 선진국에 뒤처져 있는 것처럼 앞으로 로봇 분야에서도 그들을 영영 못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4만~5만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로봇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오 교수는 "인구 수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선택과 집중'만으로는 어렵고 우리가 주력으로 삼는 산업 수가 50개·100개는 돼야 한다"며 "소수의 특정 산업 육성에만 힘을 쏟다 보면 다른 산업 분야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말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일본·서유럽 등 선진국들은 대개의 경우 기술집약적 산업이면 기술집약적 산업, 제조업이면 제조업, 서비스 산업이면 서비스 산업, 문화ㆍ예술 방면이면 문화ㆍ예술 방면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 교수에게 본격적으로 로봇 시장이 커지게 될 시점과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은 로봇 하면 흔히 마징가제트를 떠올인다. 하지만 그건 판타지다. 웬만한 가정에 청소기 한 대쯤은 있는 걸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1가구 1로봇 시대는 이미 왔다. 지능성·이동성 등의 여러 요소 가운데 어느 한 요소 등이 배제된 로봇 기술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휴대폰에 내가 좋아하는 광고만 뜨는 건 이동성이 빠진 로봇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로봇 시장은 기존에 있던 기기에 지능성·자율성·이동성 등을 포함한 로봇 기술이 접목되는 형태로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대답은 계속 이어졌다. 오 교수는 "로봇 산업만 따로 구분한 시장 규모는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되고 모든 산업의 시장 규모가 곧 로봇 산업의 시장 규모가 될 수도 있다"며 "최근 로봇 업체를 인수한 구글뿐 아니라 적지 않은 글로벌 업체들이 로봇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구글은 일본 샤프트 등 지금까지 8개 로봇 업체를 인수했다.
오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 잇따르고 있는 재난 상황에도 로봇이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로봇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수백·수천 종류가 된다. 사실 특수한 상황에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로봇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사용 범위가 좁아지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재난시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할 수 있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로봇의 발전이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오 교수는 "고령화 시대 로봇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사람이 배변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데 선택할 수 있다면 로봇과 주변 사람의 도움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로봇은 사람이 대개 귀찮아하는 일을 해주는 등 인간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자신이 개발한 휴보 로봇이 앞으로 국내 연구자들의 로봇 기술 연구 플랫폼으로 활용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를 통해 한국의 로봇 기술이 더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오 교수는 서울포럼 둘째 날인 22일 창조 세션에서 '로봇기술과 미래'에 대해 강연한다. 이 강연에서 그는 직접 개발한 로봇을 시연한 뒤 로봇 기술ㆍ산업의 전망, 기술적인 도전 등에 대해 발표한다. 사진=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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