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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 ‘퇴출계획’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캐주얼 웨어 업체인 미국의 노티카사가 더 큰 회사인 브이에프(VF)사에 매각됐다. 노티카는 연 매출 7억 달러의 중견 회사고, VF는 노스페이스(North Face), 리(Lee)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연 매출 50억 달러의 의류 종합회사다. 노티카의 경우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한참 잘 나가는 기업이다.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 재정 상태가 어렵거나 사양 산업인 경우를 의미하는 한국적 개념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회사 매각을 결정한 노티카의 하비 샌더스 회장의 설명은 한국 기업인에겐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 기업 풍토에선 지극히 당연하다. 샌더스 회장은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주식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려 주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종업원들의 미래를 안정시키고, 회사가 보유한 각종 브랜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게 넘어가면 회사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노티카의 창업자인 중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추는 합병 회사에서 노티카 브랜드의 디자인, 신제품 개발, 생산 및 마케팅 분야를 책임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를 매각한 다음에도 창업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미국 기업의 관행이다.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에겐 미국 기업의 이야기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한국 기업의 역사는 일부를 제외하고 20~30년에 불과하고, 창업자는 대부분 은퇴했거나 뒤로 물러 앉아 2세들에게 경영권을 이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국가 경제의 발전과 자신의 기업을 일구기 위해 억척같이 노력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공을 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한국의 창업자들도 초기 투자를 결정할 때 사업 모델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수익성과 미래의 성장 가능성 등을 철저히 검토한 연후에 기업을 일으켰고, 주식을 시장에 공개하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인 가운데 투자 초기부터 이른바 `퇴출 계획(Exit Plan)`이라는 개념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을 열심히 운영하다 잘되면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한국적 현실이었다. 70~80년대에 현실적으로 기업의 인수ㆍ합병이 논의될 정도로 산업 분야와 자본 시장이 발전돼 있지 않았다. 기업의 세계화도 생각할 수 없던 시기였기에 창업 기업인이 퇴출 계획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 개방이 가속화된 현실에서는 퇴출 계획이 한국 기업인들이 고려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생각한다. 퇴출 계획은 창업 초기에 투자 계획을 하는 단계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회사를 세울 때 한 사람이 단독 투자하기란 드믄 예고, 여러 투자가가 자금을 모아 투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가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퇴출 계획이 제시돼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사항은 투자자금을 가장 크게 늘릴 수 있는 전략이 제시되고, 사업을 오래 유지ㆍ발전시키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주식의 시장 공개(IPO)와 M&A도 창업 기업인들이 추구하는 전형적인 퇴출 계획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경우 투자 계획을 실행했던 창업 주역들은 일정 단계를 지나면서 기업을 전문가에게 맡겨서 운영하는 방안을 찾게 된다. 창업과 기업경영은 많이 다른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창업에 성공한 다고 해서 기업경영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며, 일단 창업 후에는 기업경영을 경영 전문가에게 맡겨 추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본다. 중국계 미국인이 설립한 왕 컴퓨터(Wang Computer)나 애플(Apple)도 이러한 실패한 예 이며, 80년대 초 21 세기의 촉망되는 신인 기업인으로 타임지 등에 소개 되기도 했던 한국 동포 실업인이 설립한 텔리비사도 창업자가 IPO까지 성공했으면서도 기업 경영을 계속하다 성공하지 못한 경우다. 창업자금을 도와주고 있는 창투사가 자금지원과 함께 경영자를 알선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퇴출 계획이란 기업창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이해하여도 좋겠다. 투자가의 투자액 가치를 최대한으로 늘리고, 창업된 기업이 가급적 오래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 다는 논리다. 막연하지 않은 명확한 창업 목표를 가지게 되면 기업 경영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숙제가 쉽게 해결된다. 창업자는 기업 대주주의 입장에서 주주의 투자가치를 극대화하고, 기업을 오래가도록 하며, 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종업원의 장래를 고려해서 기업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CEO를 선임하기에 앞장 서게 된다. 창업자가나 그의 가족이 경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기존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 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적인 특수 여건에서 창업자나 그 가족이 어느 누구보다 효율적이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전문 경영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판단은 시장원리에 따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여 이 사회에서 공정히 결정돼야 한다. 창업자나 그 가족이 노티카의 경우와 같이 특별한 전문 분야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맞는 역할을 조직 안에서 맡아 운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투명성 문제도 어렵지 않게 자율적으로 해결될 것이고, 기업경영의 승계문제도 시장원리에 맞게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해외 투자가도 깊은 신뢰를 가지고 몰려 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김영만(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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