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다. 산업ㆍ업종별 구조조정의 큰 그림이 마련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 원칙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신속히 퇴출시키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스탠스와 폭이 개별 기업에서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부는 중견ㆍ대기업 등에 대해 주채권은행으로 하여금 면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프로세스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이날 발언도 이 같은 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견ㆍ대기업들은 자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앞으로 경기침체 속도를 고려해볼 때 부실이 심화될 여지가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거명 기업들 “우리는 괜찮다”=두산과 동부그룹은 “자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말 현재 1조5,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고 오는 2월 말 주류BG 매각대금 5,030억원이 들어오면 2조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모니터링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두산은 어느 그룹보다 발 빠르게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고 경기회복기에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동부도 지난해 말을 고비로 자금사정이 호전되고 있다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말 유산스가 막히고 동부하이텍이 대주단과 맺은 자금조달 약정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자금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동부 측은 하이텍이 대주단과의 약정을 잠정 연장한 상태인데다 다른 계열사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정상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세 차례나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는데 부도 직전의 회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부제철의 전기로 건설 투자도 정상적으로 진행돼 올 7월이면 완공된다”며 자금난을 부인했다. ◇자금시장 “분위기 호전되고 있는데…”=전 위원장의 모니터링 발언이 알려지자 자금시장에서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시중의 자금사정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는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이달 중으로 발행될 예정인 한진중공업ㆍ효성ㆍ두산중공업 등의 회사채 물량도 각 기관에서 서로 인수 의사를 밝혀 발행규모를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한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한진중공업만 해도 2,000억~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이 가능하고 두산중공업은 4,000억원까지 기관들이 인수할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말만 하더라도 발행 자체가 어려웠는데 한 고비는 지나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직 회사채의 발행 금리와 국고채 금리 간 격차는 A등급 회사채를 기준으로 5%포인트 정도로 벌어져 있지만 발행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한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부제철도 유산스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22일 150억원의 원화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조선과 건설업체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분위기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심리가 크게 호전되고 있다”며 “현재 시장상황을 놓고 본다면 전 위원장의 발언은 부적절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중견ㆍ대기업 모니터링, 숨은 뜻은=정부는 중견ㆍ대기업 가운데 일부는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유동성 위기국면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이미 기업과 그룹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산업별로 신용위험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잠재위험이 높은 기업ㆍ산업 등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이 과정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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