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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철밥통’
입력2003-10-07 00:00:00
수정
2003.10.07 00:00:00
오랜 과거부터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비용이면서 저효율 분야를 택하라면 대다수 국민들은 주저 없이 정치를 꼽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통해 철옹성처럼 버텨왔다. 지역감정에 학습된 일부 유권자들이 지역주의라는 정치적 피난처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근본적인 폐해는 정책과 노선으로 유권자의 선택과 검증을 받는 정상적인 의미의 정당정치를 실종시킨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정당이 내세우는 정강정책이나 집권비전, 그리고 후보자를 중시하지 않는다. 오직 당을 대표하는 정치보스와 추종 정치인들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부터 따진다.
요즘도 노동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집회가 수시로 열린다. 종묘에서 명동성당으로, 서울역과 명동성당을 오간다. 이들 수천의 시위대는 폭염과 혹한을 뒤로한 채 줄지어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생존권확보를 위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정부에 대한 애증 섞인 원성은 있을지언정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각자의 고향을 향해 표심이 움직인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청 높여 외치던 소리들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단지 배타적 지역감정에 의한 수구초심(首邱初心)만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기득권자를 맹렬히 성토하던 노동자가 재벌의 이익을 비호해 오던 보수정당을 선택하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낳아왔다. 자그마한 구멍가게 주인도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가게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큰일 나는 줄 알고,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기호 몇 번이다”라는 말들이 젊은이들의 입에서까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러한 매커니즘하에서는 정책도 비전도 필요치 않다. 선거 때마다 지역구에 내려가서 특정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대결구도를 형성하여 표심을 자극하는 것이 당선의 지름길이다. 기존 정치인들은 손해보는 일이 없다. 단지 낡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여의도로 보내온 유권자들만이 피해자였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수십년에 걸쳐 우리 정치구도를 지배해오던 지역주의라는 `공식`이 틀렸다는 것을 국민들 스스로 일부 입증해낸 것이다. 지금 한국지역주의를 이끌어온 양대 지역으로부터 대통령이 동시에 비판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우리가 알아온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아직 우리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역주의 `철밥통`에만 의존하던 정치세력들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문석호(국회의원ㆍ통합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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