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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면 권력 가까이 말라"

■ 경주 최부잣집 300년 富의 비밀 전진문 지음/ 황금가지 펴냄 누구나 한번쯤은 한국의 전통 부자로 경주의 최부잣집 얘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집에 들어서기까지 수십리 길가 주변 논밭이 온통 그의 것이고 한 해에 벼 만석을 소작료를 거둬들였다는 조선 최고의 부자. 연간 만석의 소작료면 (병작반수제 기준으로) 약 700~1,000정보, 그러니까 200~300만평정도의 농지를 경작해야 가능했다는 추산이다. 과거의 전통 부자로서 천석꾼은 각 지방에 흔했지만 만석꾼은 일개 도에 하나나 둘 있을 정도로 아주 드물었다고 한다. 경주의 최 부자집은 부의 규모면에서 놀랍기도 했지만 조선중기부터 해방이후까지 300년 이상을 계속 이어 내려왔다는 데 그 비결과 처세에 대해 세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에 전진문 전 대구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가 쓴 `경주 최 부잣집 300년 富의 비밀`은 그 동안 널리 회자되던 경주 최부잣집의 부의 축적과정, 부를 유지해온 비결과 원칙, 산업화 속에서의 변신과정 등을 현대경영학적 관점에서 간단명료하게 소개해 준다. 최부잣집의 초기 재산 형성은 임진ㆍ병자 양난이후 이루어졌다. 1970년 타계한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최진립 장군은 양난때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는 최씨 집안의 1급 가훈으로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는 유명한 유훈을 남겼다. 권력과 가까이 하면 언제 휘둘릴 지 모르니 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위만을 가지란 교훈이다. 그의 아들 최동량 때부터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속칭 개무덤)라는 마을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최씨 집안은 손자 최국선때에 이르러 만석꾼 소리를 듣는다. 최국선은 경작지를 이조리외에 울산, 영천, 경주 북부지역까지 넓혔고, 이후 1800년대 그의 자손들은 경주의 교동으로 본가의 집터를 옮기게 된다. 최 부잣집의 발흥은 조선후기 농업기술과 제도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소작인과 지주가 각각 절반씩을 갖는 병작반수가 유행하고 수리시설 확충, 이앙법ㆍ우경법 도입 등 농사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배경으로 최씨 집안은 토지 축적에 의한 `광작(廣作)`을 실현할 수 있었다. 최씨 가문의 초기 재산축적은 농지 매입보다는 농토 개간을 통해 이뤄졌다. 양난이후 국가가 농지 확대를 위한 개간을 적극 권장하고 개간된 농토에 대해서는 개간자에게 일정기간 수조권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펴자 최씨 가문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특히 나라의 충신가문이란 점을 이용, 지방 관청으로부터 농지 개간에 필요한 인력과 우마차 등의 장비를 우선적으로 지원받아 이를 대규모 개간사업에 투입할 수 있었다. 최씨 집안은 이처럼 당시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고 신기술 개발과 투자에 적극 나서는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올곧은 경영원칙을 수립함으로써 장기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부잣 집의 가훈으로는 흔히 ▲재산은 만석이상 가지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리에 ?C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부의 축적과 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인간적 노사관계의 수립 ▲수익을 함께 나누는 후한 분배원칙 ▲중간 관리자를 배제한 현장경영 원칙 등인 것으로 분석된다. 예컨데 최 부자집은 최진립 장군을 그림자처럼 따르다 병자호란때 순국한 노비 옥동과 기별을 위한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주고 최근엔 불망비까지 세웠다. 또 조선중기 지주에게 유리한 작개법을 버리고 병작반수제를 과감하게 채택했다. 아울러 양반들이 흔히 도회지에 살며 마름을 두고 농장경영을 한 것과 달리 향촌에 거처를 두고 살면서 직접 영농에 뛰어 들었다. 중간 관리자를 둘 때도 군림하거나 폭행을 일삼는 자를 배제하고 덕망을 갖춘 인물을 선임했다. 20세기초 근대화와 일제 강점의 외풍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던 최씨 집안은 마지막 부자 최준의 대에 와서 1949년 농지개혁법이 발효된 것을 계기로 일체의 농업자본을 처분하고 대구대학과 계림대학(후에 영남대학으로 통합)에 전 재산을 헌납함으로써 300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저자인 전진문 교수는 “최씨 집안은 확고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부자 3대 못간다`는 속담을 뒤집고 무려 10대에 걸쳐 부를 유지한 한국의 메디치家”라며 “이는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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