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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55가 대마사냥의 서곡이었다. 흑57은 어서 한 수 두어 우변 백대마를 살리라는 강요였는데 여기서 이창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60으로 깊숙히 뛰어들어 버렸다. 우변 백대마의 사활을 운명에 맡기겠다는 승부수였다. 형세가 유리하다면야 백60으로는 참고도의 백1에 젖혀 확실하게 살아두는 것이 정수겠지만 흑이 4로 굳히면 상변이 통째로 흑의 확정지가 된다. 그 코스면 백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이 이창호의 판단이었다. 일단 61로 받는 박영훈. 63에서 67까지 그는 군말없이 꾹꾹 참으면서 백이 하자는 대로 따라갔다. 이창호가 68로 선수활용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박영훈은 5분쯤 장고했다. 제한시간이 서너 시간인 바둑이라면 5분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바둑은 1인당 제한시간이 10분이다. 이윽고 결심한 듯 69로 젖혔다. 꼭 잡겠다는 수는 아니다. 백이 72로 기대면서 행마의 리듬을 잡을 때 73으로 꼬부리는 수가 상변쪽 백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계산에 넣은 공격이었다. 백74까지 응수시켜 놓고 비로소 75로 흑 두 점을 살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백은 문자 그대로 양곤마의 신세. 아무리 세계랭킹1위 이창호지만 양쪽을 모두 수습하기는 무척 어려워보인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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