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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개편의 잣대

재정경제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 시절 사무관 한 명이 종금사 관련업무를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외환위기 직후 과천 관가에서 한동안 얘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수십개의 종금사들이 경쟁적으로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된 위험한 역외금융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 주무부처인 재경원의 담당자는 사무관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무슨 수로 외환위기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금융자율화와 개방화에 따라 종금사의 수가 많아지고 활동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고 있었지만 정부조직과 기능은 환경변화에 둔감했던 것이다. 외환위기가 수십년 동안의 개발연대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단이고 보면 비록 종금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많았다고 해서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막판까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멕시코사태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되풀이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과 기능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른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은 대대적인 수술과 함께 유례없는 변화를 겪었다. 특히 외환위기 책임론과 맞물리면서 당시 재경원을 비롯한 경제부처들이 수난을 당했다. 김영삼정부 때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탄생된 재경원은 공룡부처라는 비난과 함께 부총리제가 폐지되고 업무와 기능도 대폭 축소됐다. 핵심업무인 예산권은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처와 예산청으로 떨어져나가고 금융정책 및 감독업무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갔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크게 강화되고 재벌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총리실 소속이 됐다. 통상 분야는 산업자원부에서 외무부로 넘어갔다. 그러나 수평적 협력문화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우리 풍토에서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에 입각한 조직도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난 2000년에는 교육부총리제가 신설되면서 경제부총리가 부활했다. 정부부처 및 기능이 지나치게 분산, 다원화된 데서 오는 부처이기주의와 의사결정의 지연, 책임회피 등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정책조정기능 강화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예산권 없이 어떻게 정책조정을 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 적지않다. 우호친선이 목적인 외교관이 첨예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다투는 통상업무를 맡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지적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공직사회의 관심은 벌써부터 차기정권이 단행할 정부조직 개편에 가 있는 모양이다. 부처 성격상 매끈한 교통정리가 어려운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간의 해묵은 갈등과 신경전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처에 따라서는 정부 조직개편에 참여하는 학자나 정치권을 대상으로 차후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자기 부처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물밑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각 부처가 중요성을 강조하고 조직개편에서 더 많은 권한과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앞으로 정부 조직개편은 정부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과 기업의 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국민이나 기업이 이 부처 저 부처에 불려다니는 일을 줄이는 것도 정부 조직개편의 중요한 잣대일 수 있다. 정부편의주의, 특정부처의 힘이나 로비 등에 의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개편이 단골 메뉴가 되고 공직사회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문제다. 국가와 국민경제의 발전,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러나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 열 가지를 하는 것보다 쓸데없는 일 한 가지를 안하는 것이 더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일 수도 있다. 우리보다 잘사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단순한 정부조직을 가지고 있다. 우리처럼 부처도 많고 장관이 자주 바뀌는 나라도 드물다. 꼭 필요한 일은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안해도 되는 일은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가 되는 길이다. 논설위원(經營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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